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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의 현장정치] 거부권 시효 끝은 악몽의 시작일까

[송국건의 현장정치] 거부권 시효 끝은 악몽의 시작일까

기사승인 2024. 10. 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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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객원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법안거부권'(재의요구권)을 취임 후 2년 5개월 동안 24번 행사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45회)을 제외하곤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므로 이승만 정부 기록을 깰 수도 있다. 야당이 앞으로도 '거부권 수요'를 제공할 게 뻔한 까닭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거부권이 '0'이었음을 들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중독증' 프레임을 씌운다. 진실을 따져보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은 새로 집권당이 된 민주당 의석이 120석으로 과반(150석)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야당으로 전락한 보수 정치세력은 정권을 견제할 동력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분열되면서 자유한국당은 94석만 보유했고, 바른정당 탈당파가 모두 복귀해도 106석 정도였다. 나머지 의석 중 40석은 중도정당을 표방한 국민의당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집권 세력의 초반 국정운영에 발목 잡힐 일은 없었다. 소위 '촛불 민심'을 내세운 좌파 정권의 기세도 등등했다. 더구나 2020년 총선을 통해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한 뒤엔 청와대와 과반 여당이 한통속으로 입맛에 맞는 법안을 속속 처리했으므로 대통령의 거부권은 불필요했다.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임기 5년을 통째 여소야대로 가는 첫 정권인데, 특히 거부권 없는 국정운영이 아예 불가능한 이유가 둘 있다. 하나는, 우파 정권의 국정 철학과 방향에 맞지 않는 '이념 법안'이 '민생 법안'으로 둔갑해 잇달아 통과되면서 윤석열 정부 정체성을 흔들기 때문이다. 여기엔 5년 만에 좌파 정권이 끝난 데 따른 대선 불복 심리도 깔려 있다. 다른 하나는, 제1야당 대표(이재명)와 제2야당 대표(조국)의 사법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방탄 법안'에 '개혁 법안' 탈을 씌워 속속 처리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중독이 아니라 야당 대표들의 방탄 중독이라는 게 여권 주장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야당이 '민생' 관련이라고 주장함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보자. '양곡관리법'은 농민 보호 명분을 내세우지만 '남는 쌀 강제 매수법'으로 전형적 포퓰리즘 법안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약자 보호라고 주장하나 '선(先)구제 후(後)회수'로 국가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민노총이 주도한 '노란봉투법'은 산업현장에 적용하면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시장보다 정부개입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야당은 이 중 '노란봉투법' '25만원 지원법'은 한 번 거부권이 행사됐음에도 내용을 조금 바꿔 다시 통과시켰다. 그 집요함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걸까.

야당이 '개혁'을 내세우지만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법안을 보자. '방송법'은 좌파 세력의 이사진 대거 진입을 통한 공영방송 영구 장악용이다. 더 넓게는 좌파 영구 집권을 위한 포석이다. '채해병 특검법'은 내용을 조금만 눈여겨봐도 진실 규명보다는 용산의 '직권남용' 꼬투리를 들춰내 대통령 탄핵의 불쏘시개로 쓸 요량임을 눈치 챌 수 있다. '김건희 특검법'은 채해병 특검법과 추진 목적이 같다. 야당은 '방송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두 번, '채해병 특검법'은 세 번이나 재표결에 부쳤다. 재발의 할 때마다 독소조항을 계속 추가했다. 그 집착은 뭘 목적으로 하는 걸까. 또 다른 차원에서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 입법을 추진하다 거부권에 막힌 사례도 있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인데, 이건 완전히 진영의 철밥통을 지키자는 의도다. 심지어 공산혁명을 꿈꾼 남민전 사건, 경찰관 7명이 사망한 부산 동의대 사건 관련자를 예우 대상에 포함하려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쏟아지는 '이념 법안' '방탄 법안'들을 거부권 행사로 간신히 막아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2년 반 이상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 5월까지다. 그사이에 여대야소 정국이 형성돼서 마음 편하게 국정을 운영할 기회는 없다. 좌파가 완전히 장악한 22대 국회 임기 만료가 윤 대통령 퇴임 1년 후인 2028년 5월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더 큰 걱정이 생긴다. 만일 2027년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승리하면? 좌파 대통령은 다수 여당이 된 민주당의 '이념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면 속속 사회주의 성향의 입법이 완성된다. 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들도 다시 추진돼 각종 법조문에 버젓이 오른다. 문재인 정부에서 거대 여당 민주당과 손발을 맞춰 탈원전, 검수완박 관련 법안 등을 처리했는데, 지금은 야권에 사회주의 성향이 더 강한 의원들이 들어가 있다.

결국 우파 진영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민이 살게 될 판이다. 그 악몽이 더 빨리 시작될지도 모른다. 사법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두 명의 야당 대표가 대통령 탄핵을 통한 조기 대선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파의 꿈을 깨야 할 우파는 다가올 악몽을 외면한 채 두 갈래로 쪼개져 있다.

송국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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