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고] 사라져가는 길, 그리고 다시 찾은 희망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onelink.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20501000296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2. 05. 18:00

윤종찬 행정안전부 2030자문단원.
KakaoTalk_20241204_165917675
윤종찬 행정안전부 2030자문단원.
경북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 시골 마을이다. 집도 사람도 드물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이웃의 정과 모두의 웃음이 가득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던 친구들, 살갑게 맞아주던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귀엽던 강아지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렇게 함께 울고 웃으며 쌓아온 추억들이 오늘날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찾은 고향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달라져 있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문을 닫았고, 초등학교는 단 15명의 학생만 남아 폐교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때 끝없이 내달리던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했고, 새벽 안개를 헤치며 밭일하러 떠나시던 아버지들의 고함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고향에 대한 미안함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행정안전부 2030자문단'의 문을 두드렸다. 무엇보다 청년의 시각에서 사라져가는 지방을 살릴 해답을 찾고 싶었고, 미약하게나마 이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활동을 시작하고 문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현장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정책현장의 당사자 혹은 전문가를 만나는 '인물인터뷰챌린지'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은 한적한 시골길에서도 뜨겁고 또 단단했다. 시대의 난제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도, 희망의 빛은 있었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해안마을에서 만난 한 청년마을 대표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저는 지금이 행복해요."
그 한마디는 삭막한 현실 속 경쟁과 비교에 매몰된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수도권에서 과연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룬다고 해서 과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얼마나 옥죄며 살아왔는가 되돌아보기에 충분한 한마디였다. 그렇게 다시금 지역에서의 삶을 추억하게 됐다.

그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도 똘똘 뭉쳐 있었다.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하여 카페로 만들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마을의 장점을 끊임없이 발굴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가 말한 행복은 단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만이 아니라 주민들과 나누는 공동체의 행복,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가 자신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기도 했다.

분과회의와 대면회의를 통해 이러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무엇보다 지방 청년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완화하고, 지방만의 고유한 재미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깊이 고민했다. 또한, '공공서비스디자인'이라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용해 생활인구 확대 방안, 구직단념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청년세대의 진짜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온라인 회의, 졸업식 현장 방문, 초점집단 인터뷰(FGI) 등을 추진하고 수요자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해 최종 우수제안으로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가 주안점을 둔 것은 이렇게 행복과 기회를 말하는 지역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정책을 제안하는 일이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단순히 통계로 표현할 수 없는, 땀과 눈물로 하루를 일구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아낸 활동들은 작게나마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남을 것이다.

자문단 활동을 마무리하며, 내 마음은 고향의 새벽길로 다시 돌아간다. 폐교 위기에 처한 초등학교, 희미해져 가는 고향의 기억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고향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들은 내가 걸어온 길의 시작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될 것이다. 결국 정답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차갑고 고요한 새벽을 열어갈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자문단 활동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길의 주인공이 되어, 희망의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가길 소망한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