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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억짜리 대화록]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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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남 기자

승인 : 2015. 10. 05. 18:58

[프롤로그] 임마누엘 페스트라쉬 교수와의 대화
올해 3월 종로3가 지하철역 앞에서 한 외국인 학자를 만났습니다. 갈색 야구모자에 긴 검은 코트를 입고 백팩을 매고 손에는 여러 장의 서류를 들고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겉모습은 청년 같았는데 모자를 벗으니 기품있는 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그는 요즘 그야말로 핫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교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중에 읽은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죠. 저를 만난 그 때는 별로 핫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는 처음부터 이 외국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밥을 먹자며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허름한 갈치구이집 미닫이 문을 자연스럽게 열더군요. “갈치먹을거죠?” 라고 한마디 묻더니 “이모, 갈치구이 2개 주세요”라고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푸핫!”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사실 교수님은 채식주의자라 생선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데 그날은 특별히 먹을만한게 없어서 저를 위해 드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날은 첫 만남인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나중에 교수님과 자주만나고 했던 이야기들을 곱씹다보니 교수님이 그냥 책 한권으로 반짝 뜬 스타교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놀라운 집안사…천재가 낳은 천재

그러다 교수님과 석학들의 인터뷰를 해보자고 말이 나왔는데... 그런 모의(?)를 한 계기는 교수님의 어린 시절과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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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어떻게 6개국어를 하세요?”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교수님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주 탁월한 사람이었어요. 16살때 하버드와 예일대를 동시에 합격했죠. 의학을 전공했지만 프랑스를 좋아해 프랑스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대학교 3학년때 1년을 휴학하고 파리에 가서 공부했는데 그때 어머니를 만났죠.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를 만나면서 아버지는 의학을 버리고 음악을 본업으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는 성루이스 교향악단과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을 거쳐 지금은 바로크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책임자로 계시죠. 아버지는 어떤 분야에 있든 늘 자신의 분야에서 출충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도 그랬어요.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절 돌봤기 때문에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녀는 파리통역대학원을 졸업한 인재였고 미들베이 컬러지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죠. 하지만 재능은 미술에 있었어요. 나중에는 화가가 돼 꽤 유명세를 탔고 전시회도 많이 열었어요.”

교수님의 말이 끝나고 내 머리속에 맴도는 단어들은 ‘하버드 예일대 동시합격’‘파리통역대학’....

자녀들에게 자신감과 동기를 주는 아주 정확한 방법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교수님은 뒤통수를 한대 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대학을 나왔다. 잘났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이분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모습 자체가 저에겐 교육이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바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죠. 아버지는 늘 나에게 내 수준 보다 높은 책을 보게 하셨어요.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함께 고민해줬죠. 또 음악회와 박물관을 데리고 다니면서 학습자료는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에도 많다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나와 상의했는데 나를 ‘작은 어른’으로 보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어요. 이런 점은 내게 뿌리깊은 자신감을 줬어요.

어머니는 늘 집에서 나와 함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셨어요. 어머니는 인도에서 산 적이 있는때 인도 이야기를 자주해주셨고 인도 요리도 만들어 먹었어요.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어머니는 다른 문화가 배울만한 가치가 있고 다른 문화지역에서 사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이야기를 자주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복이 있는 것은 학식이 높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난 것보다 내 일상 하나하나를 학습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준 부모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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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뭔가를 생각하는지 머리에 손을 갖다 대더니 말을 이어갔다.

“더 중요한 건 내적 동기인것 같아요. 말콤 그래드윌의 아웃라디어라는 책 읽어봤어요? 빌게이츠 이야기 기억나요?”

“네”라고는 대답했지만 ‘1만시간의 법칙’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빌게이츠의 성공은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을때 자기의 의지에 따라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고 한 사람의 탁월한 인재가 될 수 있었어요. 저는 이 관점에 완전히 동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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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 유표수집을 했어요. 할아버지는 편지를 자주 쓰셨는데 저에게도 편지를 써주시면서 우표를 많이 붙여서 보내셨죠. 가끔은 직접 나가서 세계 각지의 우표를 사서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내가 점점 우표수집에 빠져있을 때 우리 이웃에 사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도 우표수집이 취미였죠. 그는 가끔 받은 우표를 저에게 주곤했고 집에 초대해 우표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줬어요. 그가 가진 독일의 20세기 30년대 우표는 액면가가 천억마르크였죠.
그는 당시 말도 안되는 인플레이션 이야기를 해줬고 나는 당시 세계 대공항의 역사를 우표 한 장을 통해 알게됐죠. 그건 역사의 큰 강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일이었어요. 그 후에 나는 이 작은 종이(우표)에 더 친근감을 갖게했죠. 그래서 우표수집이라는 취미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가져다 줬어요.

우표 수집이라는 내 취미가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옮겨갈때 그 목마름을 계속 채워주면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 사람들이 바로 지금 나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렸을때의 아주 작은 지지 하나는 태풍처럼 한 아이의 인생을 소용돌이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에요.”

세계의 뇌섹남들, 소녀시대 사진 공유하듯 “내 글을 공유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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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이 한국 가정에서도 가능할까? 이런 생각은 들더군요.

그런 사례가 하나 있긴 합니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그 가정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아이가 너무 게임을 좋아해서 엄마가 늘 고민이었는데 아빠가 정보통신(IT) 쪽 시니어 기자여서 게임회사 취재할때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게임을 하는 것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흥미가 옮겨졌고 그쪽으로 재능을 개발시켜주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두 사례 다 부모가 아이의 취미, 흥미 분야에 대해 그만한 안목이 있고 조언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부모님들은 그럴만한 지식이나 식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은 뭔가 생각 났는지 책상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꼭 그런 조언을 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부모님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지금 한국 청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게 사실이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 청소년들과 청년들…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인터넷으로 상당수의 정보를 접하는데 인터넷 정보는 쓸모 없는 것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보고 공유하는 것 중에서도 상당수는 재미를 위주로 한 것이에요. 재미있는거 보고 웃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많은 학자들의 정말 중요한 생각도 같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어렵다고 우선 귀를 닫아요. 그런데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이에요. 특히 자신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의 문제죠. 알고 있다면 미래를 개척하는데 도움이 될거에요. 소녀시대 사진을 공유하듯이 학자들의 의미있는 생각이 공유된다면 한국의 천재의 나라가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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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피케티나 마이클 샌들처럼 저명한 학자들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아주 색다른 이야기들을 많이해봐요. 우리가 얼마나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교수님과 석학들의 인터뷰는 시작됐습니다. 뇌섹남들의 대화죠.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져 나갈지도 몰라요.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어도 늘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더라구요.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그 삼천포에서 더 좋은 생각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이제 그들의 대화록을 공개하겠습니다.

추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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