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간첩혐의에 고문받는 사우디 여성운동가, 왕세자 개혁 정책 어디에…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onelink.asiatoday.co.kr/kn/view.php?key=20190314010008379

글자크기

닫기

성유민 기자

승인 : 2019. 03. 14. 16:39

구금된 인권운동가들, 독방·물고문, 법적 지원도 고립돼
28167695_10215774257047189_4299403685727611555_n
/로우자인 알 하트로울(Loujain al-Hathloul) 페이스북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계승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3년 전부터 여성의 기회 확대와 운전금지 해제 등 일련의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주요 여성운동가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고, 이들을 물고문하거나 반역자로 매도하는 등 오히려 여성 인권이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오랜 세월 악명을 떨쳐온 사우디 여성 인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1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여성운전 허용 캠페인을 벌이던 중 간첩 혐의로 구속돼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로우자인 알 하트로울의 공판이 전일부터 시작됐다. 사우디의 대표적 여성운동가 하트로울은 2013년부터 유튜브에 운전 영상을 게재하면서 여성운전 허용 캠페인을 주도했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캠페인 중단 압박에 시달리다 지난해 5월 19일 다른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구속되기에 이른다.

구속 사유는 간첩 혐의. 당시 한 정부 관계자는 “이들이 외국 단체와 협력해 국가 안보는 물론 사회 안정과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친(親) 정부 언론들도 이들 여성운동가를 반역자로 매도하며 비방 공작을 했다.

구속자들의 가족과 인권 단체들은 이들이 심문 도중 고문을 당했으며, 변호사와 가족의 접견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트로울의 언니는 그가 독방에 구금되고, 가혹 행위인 물고문(워터보딩)을 당하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국제엠네스티 역시 전기고문·채찍·성추행 등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고문 혐의를 부인하며 구속된 사람들이 헌법에 따라 모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사회 개혁과는 반대로 사우디의 여성 인권이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꼽히는 사우디의 여성 인권 문제는 이미 오랜 세월 악명이 높았다. 사우디 여성들은 법과 관행을 통해 뿌리깊은 차별과 마주해왔다.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여행·노동·교육·결혼 등이 불가능했으며, 운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이에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을 ‘개혁파’로 자처하며 운전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등 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여성운동가들은 오히려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조치 이후 금지 행위에 대한 단속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여성들 뿐만 아니라 평화적으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나 언론인, 학자들에게도 가차없이 탄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지난해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피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의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정부가 여성운전을 허용한 시점과 거의 맞물려 하트로울을 체포한 것만 봐도 사우디 정부의 개혁 정책은 인권 탄압을 포장하기 위한 얕은 술책에 불과하다며 비판했다.

미국 국무부가 13일 발표한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에도 사우디의 열악한 인권 실태가 나와 있다. 보고서는 최근 사우디가 개혁을 통해 사람들의 자유를 증진시키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초법적 살인과 처형·강제 송환·실종·정부 요원에 의한 수감자 고문 등의 인권 유린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우디 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평화적인 시위마저 제한하는 등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조차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사우디 사법부가 시위자·개혁 운동가·언론인들에게 높은 형량을 선고하라는 ‘무언의 지시’를 받았다는 인권운동가들의 주장도 언급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성유민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