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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이자 현재 밴플리트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셉 매크리스천 주니어 예비역 대령은 6·25 정전협정일 70주년을 맞아 한국에 초청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미 육군에서 대장까지 지낸 밴 플리트 장군은 6·25 당시 주한 미8군 사령관(1951년 4월∼1953년 1월)을 맡아 남침한 중공군을 격퇴한 공로가 인정되면서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참전 10대 영웅'으로 선정됐다. 당시 벤틀리 장군이 지휘한 미군의 대규모 포격으로 중공군이 후퇴를 했고 전선도 38도선 이북으로 올라가게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사장님의 할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은 생전에 어떤 분이었고 한국에 어떤 기여를 했나.
"1915년에 미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1953년에 전역을 하기 전까지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 등 총 5차례의 전쟁에 참전했다. 6·25전쟁에는 1951년 4월경에 투입됐다. 한국에 대한 기여는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한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하셨다. 부임 초 서울은 중공군이 유엔군 공세에 밀려 서울을 막 내어준 뒤 전열을 가다듬는 시기라 수차례 적지 않은 공세를 퍼부었다.
이로인해 서울이 다시 위기에 놓였으나, 밴 플리트 장군은 광화문에서 야포 400여 문을 모아 적의 서울 공격을 저지했다. 두 번째로 한국의 안보증강을 위해 미국의 육사를 본 따 한국에 육군사관학교를 만드셨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전후 재건작업을 도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현재의 울산 공업단지다."
-밴 플리트 장군은 전후 한국 재건사업에도 공을 들였는데 장군은 어떤 부분에서 한국인들을 특별하게 보았나
"밴 장군은 '한국인들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싸워 이기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평소 말씀하셨다. 미국인처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던 부분이 밴 장군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 같다. 이 밖에 저한테는 삼촌인 밴 플리트 2세가 6·25전쟁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는데 공교롭게 제가 10살이 되던 해에 실종됐다. 그래선지 밴 장군은 한미교류에 더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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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한·미동맹이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미동맹은 대단한 동맹 중 하나다. 이렇게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데 일조해준 윤석열 대통령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도 미국에 대한 우정을 마음 안에 간직 해주길 바라고, 밴 플리트 장군과 백선엽 장군이 늘 '함께'라고 말 했듯이, 윤석열 대통령도 미국과 '같이 갑시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밴 플리트 장군께서 들었던 업적 중 특별한 일화가 있는지
"백선엽 장군을 처음 만났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셨다. 당시 그를 만났을 때 백 장군 나이가 고작 29살이었지만, 그 어떤 군단장보다 우수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일례로 당시 35만명의 중공군이 서울로 내려오는 상황에서 미국은 철수명령을 내렸지만, 밴 장군과 백 장군은 포기하지 않겠다 다짐했고 결국 지켜냈다. 심리적으로 서울을 수호하는 게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던 것 같다."
-밴플리트 재단 (Van Fleet Foundation)은 어떤일을 하고 있는지
"밴 플리트 장군의 기록물을 디지털화 시켜서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장군의 지식과 영감, 그리고 생각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게 우리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