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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만추(晩秋)의 원주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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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자

승인 : 2020. 11.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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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
여행/ 뮤지엄산
뮤지엄 산의 야외 카페. 파란 하늘과 눈 앞에 펼쳐지는 천연한 자연에 마음이 상쾌해진다.
만추(晩秋)의 여행지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 괜찮다.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지면 가을의 서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 느린 걸음, 마음 따라 산책하는 미술관

강원도 원주 지정면에 위치한 ‘뮤지엄 산(SAN)’은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는 곳’이다. 전원형 미술관인데 그 자체가 거대한 작품이다. 일단 사위 풍광이 좋다. 국내 굴지의 제지 생산 회사인 한솔제지가 야산 정상부를 정비해 세웠다. 미술관을 에두른 준봉들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니 갈 때마다 분위기가 새롭다.

여행/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의 워터가든. 아치형 조형물은 미국 미술가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이다.
여행/ 뮤지엄 산
뮤지엄 산 워터가든. 파란 하늘과 나무가 미동 없는 수면에 반영되는 풍경이 예쁘다.
관람 여정은 기분 좋은 여행이 된다. 담장을 돌면 산상 정원(플라워가든)이 펼쳐지고 자작나무 숲길도 등장한다. 꿈속 같은 분위기의 물의 정원(워터가든)도 나온다. 미동 없는 수면에 파란 하늘과 싱싱한 자연이 오롯이 반영되는데 이 ‘거울 효과’가 걷는 속도를 자꾸 늦춘다. 배우 공유가 나온 커피 광고도 여기서 찍었다. 곳곳에 자리 잡은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플라워가든의 대형 설치작품은 미국 출신의 미술가 마크 디 수베로의 것이다. 워터가든의 상징인 아치형 조형물은 역시 미국의 미술가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이다. 플라워가든, 자작나무 숲길, 워터가든에서 자연과 예술을 만끽한 후 비로소 본관에 발을 들이는 동선이다. 바람이 산등성이 타고 넘고 마음은 바람 따라 흐른다. 이 마음을 좇아 발길이 움직이는 것이 여느 미술관과 다르긴 다르다.

뮤지엄 산은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다. 고졸 출신이지만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1995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까지 받았다. 다른 유명 시상식에서도 숱하게 수상했다. 이곳을 그가 설계했다. 뮤지엄 산 홈페이지에서 그의 설계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조용한 상자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건물 본체 뿐만 아니라 부지 전체를 뮤지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말입니다.” 산(SAN)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마운틴(山)’이 아니다. ‘자연 속 예술 공간’을 뜻하는 스페이스(Space), 아트(Art), 네이처(Nature)에서 따왔다

여행/ 뮤지엄 산
뮤지엄 산 스톤가든. 돌로 만든 9개의 스톤마운드가 있다. 안도 타다오가 경북 경주 신라의 고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설치했다.
여행/ 뮤지엄 산
뮤지엄 산 자작나무 숲길.
안도 다다오는 콘크리트 공부를 많이 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이 많다. 그런데 뮤지엄 산 본관은 붉은 빛깔의 ‘파주석’으로 꾸며졌다. 파주석 박스 안에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놓인 ‘박스 인 박스(Box in Box)’ 콘셉트다. 건물 구경이 흥미롭다. 실내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담과 처마 사이를 텄는데 여기 비집고 드는 볕이 마음을 참 순하게 만든다. 본관은 네 개의 구조물로 이뤄졌고 이들은 사각형, 삼각형, 원형의 외부 공간과 연결된다. 각각은 대지와 사람과 하늘을 상징한단다. 안도 타다오의 건물에 깃든 한국적인 요소다. 본관 뒤편의 스톤가든도 그렇다. 여기에는 돌로 만든 아홉 개의 스톤마운드가 있는데 안도 다다오가 경북 경주의 신라 왕릉을 보고 영감을 얻어 설치 했단다. 돌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이색적이다. 본관에는 종이와 관련한 페이퍼갤러리와 미술관인 청조갤러리가 있다.

스톤가든을 지나면 제임스 터렐관이다. 제임스 터렐 역시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시각예술에서 사물을 인식하기 위한 도구이자 조연인 ‘빛’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빛의 미술가’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을 통해 빛을 관조하는 가운데 사색을 하고 궁극적으로 내면까지 살피게 된다.

제임스 터렐관에는 ‘스카이스페이스’ ‘호라이즌 룸’ ‘간츠펠트’ ‘웨지워크’ 등 네 작품이 전시 중이다. 스카이스페이스는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빛을 보여준다. 호라이즌 룸은 계단 위에 난 사각형의 문을 통해 하늘과 빛을 보여준다. 나중에 문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을 차례로 경험하도록 했다. 웨지워크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만든 창을 보여준다. 간츠펠트가 가장 흥미롭다. 언뜻 보면 벽걸이 TV 같은 사각형 평면인데 이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상자 안에서 색의 변화를 보며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제임스 터렐관은 별도로 예약해야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만 들어간다.

여행/ 거돈사지
거돈사지.
여행/ 법천사지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 오래된 풍경이 건네는 위로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을 좇는 일도 만추에 해볼 만하다. 원주에는 절터(폐사지)가 많다. 부론면의 법천사지와 거론사지가 잘 알려졌다. 부론면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남한강 지류인 섬강이 흘러서다. 불교가 흥했던 고려시대에 강을 따라 사찰이 많이 들어섰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 소실됐다.

폐사지에 뭐 볼게 있을까. 맞다. 입이 쩍 벌어질만한 볼거리를 찾기는 어렵다. 공허한 대지에 주춧돌과 탑, 낙엽처럼 뒹구는 돌덩이가 전부다. 폐사지는 눈(目)보다 마음으로 봐야한다. 눈을 감고 마음을 열면 웅장한 가람들과 아름답고 화려한 석탑과 비석, 진심을 담아 기도하던 보살들의 흥성거림이 오롯이 전해진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니 폐허는 결코 폐허가 아니다. 팁 하나 더 추가하면, 허허로운 폐허는 역설적이게도 온전한 듯 보였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게다가 속세와 단절 된 듯 적요하고 은밀해서 온갖 감정과 넋두리를 쏟아내기에도 그만이다.

법천사지에선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가 유명하다. 고려시대 원주 출신의 국사이자 법상종의 고승인 지광국사 해린(984~1067)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머릿돌에 새겨진 그림이 화려하다. 현묘탑비 앞에는 원래 현묘탑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자리만 있다. 현묘탑은 복원 중이다. 우여곡절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다. 어렵게 돌려받았지만 한국전쟁 때 또 부서졌다. 거돈사지에서는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를 봐야한다. 고려시대 고승인 원공국사 지종(930~1018)은 한때 고려 불교계를 주도했던 법안종의 고승이다. 승묘탑비의 비문은 최충이 짓고 김거웅이 쓴 것으로 전한다. 원숭이 얼굴 모양의 받침돌도 흥미롭다. 절터 뒤편 언덕에 원공국사승묘탑 모조품이 있다. 진품(보물 제190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승묘탑 앞에서 보는 풍경이 고상하다. 폐사지 한쪽에는 천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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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출렁다리.
여행/성남리 성황림
성남리 성황림.
지정면의 간현관광지는 오래된 유원지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의 단골 엠티(MT) 장소였으니 중·장년층에는 추억의 장소다. 경기 가평의 대성리, 강원 춘천의 강촌 등이 뜨면서 이후에는 조금씩 잊혀졌다. 그런데 2018년 1월에 관광지 안에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높이 100m, 길이 200m의 출렁다리가 놓였다. 이게 ‘대박’이 났다. 그 해에만 18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 요즘 전국을 휩쓰는 ‘출렁다리 열풍’의 진원지가 바로 여기다.

오래된 관광지의 변신은 진행 중이다. 깎아지른 산허리를 따라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가 놓이고 있다.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 전망대 등도 들어설 계획이다. 출렁다리 아래 바위 직벽을 활용한 미디어파사드도 준비되고 있다. 관광지를 관통하는 중앙선 폐철길에는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레일바이크에서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아래에서 올려다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듯했던 유원지의 ‘부활’이 반갑다. 그날의 시간도, 추억도 함께 깨어나니 이게 또 살아갈 힘이 된다. 바쁜 변신에도 섬강과 삼산천이 굽이굽이 흐르며 만들어내는 풍광은 여전히 수려하다.

원주에는 오래된 숲도 있다. 신림면 성남리의 성황림이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소원성취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신성한 숲’이다. 숲 가운데 서낭당(당집)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오래된 전나무, 왼쪽에는 엄나무가 있다. 이게 신목(神木)이다. 전나무의 높이는 약 30m, 가슴높이 둥치의 지름은 약 1.2m다.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뻗어야 에두를 수 있는 굵기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 초파일과 9월 9일(올해 10월 25일)에 모여 이 나무에 소원성취를 빌었다. 이어서 엄나무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숲은 제사가 진행되는 날에만 외지인의 출입이 허용됐다. 그래서 숲은 잘 보존됐다. 이제는 토요일마다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신청자가 20명 이상이면 들어갈 수 있다. 신청은 ‘성황림마을’ 블로그에서 할 수 있다. 숨 멎을 듯 경건한 숲에 들면 마음이 또 차분해진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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