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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보수주의 영화 ‘돈 룩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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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2. 03. 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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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지난겨울 대선 열기가 한창 고조될 때,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아담 맥케이 감독)’이 서비스됐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터이다. 그 만큼 세간의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영화는 트럼프시대를 관통한 미국의 자화상을 다룬다. 아니 그보다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미 폐기된, 신자유주의의 여파를 견뎌내고 있는 21세기 미국의 웃프면서도 신랄한 살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어느 날 한 대학의 연구실, 과학자들은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지만 기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혜성의 궤도가 정확히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곧바로 이들 과학자들은 사실을 정부에 알리고 대통령을 만난다. 하지만 대통령의 셈법은 달랐다. 노련한 정치인답게 이를 중간선거에 이용하려고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충언은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언론 또한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극적인 아이템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혜성을 파괴할 우주선 발사를 준비하고 위기를 극복할 의지를 다진다.

그러나 이도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다. 대통령과 커넥션관계에 있던 제계의 거물이 엄청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 즉은 혜성의 궤도를 바꿔 재앙을 피하기보다, 작게 부수어 바다에 낙하하게 하고, 거기에 매장된 희토류 등을 채굴해 엄청난 부의 원천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다는 보고다. 실로 헛웃음이 터질 이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이로서 지구를 구할 기존의 모든 계획은 취소된다. 이제 미국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풍요의 시대를 구가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이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로 양분된다.

그런데 후자는 마지막 순간이 될 더없이 소중한 시간마저 박탈당한다. 전자의 무리들은 행동대를 조직해 ‘돈 룩 업’을 외치며, 두려움에 쌓인 평범한 이들에게 린치를 가한다. 폭력에 노출된 ‘룩 업’의 소시민들은 가정으로 돌아가 인류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지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크레디트 이후에 배치된 에필로그를 통해 풍자적으로 벌거벗은 지배자들을 조롱한다.

앞서 스토리를 살펴본 바대로, 도대체 현안과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요직과 이권을 나누는데 급급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행태, 할 말을 잃게 하는 언론이란 이름의 약탈자들, 그리고 다국적기업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자신들의 영토로 빨아드리는 신묘한 자본의 논리 등, 온갖 지배이데올로기의 어두운 이면을 가감 없이 꼬집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진보적이다. 그런데 찬찬히 톺아보면 영화 ‘돈 룩 업’은 의외로 보수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사실, 정관계, 경제, 언론 등 지배 엘리트들의 사주로 거리에서 ‘돈 룩 업’을 외치는 이들은 모순되게도 소외된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등을 떠미는 배후를 향해 분노해야함에도,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자신과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을 향해 폭력을 가한다. 혐오와 분노의 정치가 작동하는 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듯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묘하게도 ‘돈 룩 업’은 ‘룩 업’을 역설한다. 관객은 ‘룩 업’을 따르는 이들과 공감하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두려움을 넘어 경외심으로 서로 화해하고 친구와 가족을 찾는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모여 최후를 맞이한다. 기독교적 신앙관과 청교도적 금욕주의가 가족주의라는 미국의 보수적 가치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돈 룩 업’은 미국에 대한 신랄한 자화상임과 동시에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를 소망한다. 솔직히 미국에 진짜 보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치하고,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묻고 싶다. 그 품으로 돌아갈 따듯한 보수주의가 제대로 있었는지 말이다. 혐오와 분노가 설자리 없는 그런 곳 말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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