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 도움없이 홀로 역경 작업만 30년 넘어
"힌두전통 등 알아야 불교 전반 이해 가능"
"후대 불교사상, 초기불경 안에 근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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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박사는 1953년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했다. 이후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독일 본대학에서 인도학·티베트학을 연구했다. 독일 본대학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강사, 중앙승가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 1999년 총11권의 '쌍윳따니까야' 완역을 시작으로 상당수의 초기불전을 번역했다. 국내 최초로 '빠알리어 사전'과 '티베트어 사전'을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주 경기도 고양시 한국빠알리어성전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전 박사는 백발의 도인(道人)이었다. 그는 후대 불교사상의 근거가 빠알리경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는 단순 '웰빙' 아닌 그 이상의 진리로, 학습해 나가는 계율의 본뜻과 가치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다.
-빠알리경전 번역에 나선 계기는.
"독일 본 대학으로 유학을 갔을 때 무소유를 실천하는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를 만나면서 빠알리경전을 알게 됐다. 그는 빠알리경전을 늘 봤다. 석가모니 제자와 같은 모습으로 사는 그의 거룩한 모습에 반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로 번역된 방대한 양의 빠알리경전을 보게 됐고 우리나라에 이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단의 지원 없이 거의 홀로 번역하는 것으로 안다.
"초기에는 여러가지로 힘들었다. 1989년에 시작했지만 몇 년 뒤 사무실 화재로 영국 빠알리성전협회에서 수입한 빠알리대장경과 독일에서 가져온 많은 문헌 등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이 겹치면서 번역이 한동안 중단됐다. 이후 도법스님 등 스님과 불자(불교 신자)의 도움을 받아 쌍윳따니까야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번역 작업이 시작됐다. 경전 번역이 좀 진척되니 이번에는 교정 작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교정 미흡으로 번역한 책을 전량 폐기처분하는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빠알리경전을 우리말로 옮길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빠알리경전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과 베다 전통 같은 배경지식이 필수다. 이런 바탕 없이 언어학적으로만 번역하면 오역이 발생한다. 불교를 철학이나 심리학처럼 여기는 학자들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불교는 종교다. 특히 존재가 겪는 고통을 직시한 종교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는 부정관(不淨觀·배설물 등 몸의 더러운 측면을 관찰함으로써 욕망을 다스리고 무상함을 깨닫는 수행법)을 필수적이며 중요하게 언급하는데, 학자들은 이런 가르침을 관습적인 문구 정도로 보고 빼버리더라. 또한 초기불교에는 힌두교의 박티(신에 대한 절대적 헌신·사랑)사상이 깔려있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에 대한 공경이나 사찰의 예경의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전제를 이해해야 한다."
-빠알리경전 구절을 아는 신자들도 경전을 제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빠알리경전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부처님도 처음에 설법하는 것을 주저하신 게 아닐까. 빠알리경전에 담긴 부처님 말씀은 하나하나가 화두인데 이걸 읽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도 뜻 있고 눈 밝은 분들은 잘 번역된 초기경전을 찾고 있다."
-왜 빠알리어 경전이 중요한가.
"빠알리경전은 쉬운 말로 쓰였지만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광대하고 심오한 거울과 같은 가르침이다. 또한 하나의 경전이 팔만사천 법문과 연결돼 있어 한 구절을 읽어도 풍부한 사유를 끌어낼 수가 있다."
-어떤 계기로 율장(律藏·계율 모음)을 번역하게 됐나.
"수행으로 영적체험을 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보고 율장을 봐야겠다고 느꼈다. 율장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았다고 착각했을 뿐 정확히 뭐가 잘못인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분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는 쌍윳따니까야에 있는 '피바다의 설법'(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그들이 과거 잘못으로 흘린 피가 바다를 이룬다며 경각심을 일깨운 구절)을 보고 과거 생에서도 자신이 술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술을 끊을 수 있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알아야 습(習·익숙해진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중국에 퍼진 후대 불교사상과 초기불교는 어떻게 이어지나.
"빠알리경전에서 후대 불교 이론의 근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앙꿋따라니까야를 보면 석가모니께서 '본래 마음은 청정한 것이나 객진번뇌(밖으로부터 들어온 번뇌)에 의해 오염이 된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바로 이게 후대 불교사상에서 말하는 불성론이나 여래장 사상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스님들이나 종단에선 신자들이 율장을 보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신자들도 율장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계율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빙산'에서 물속에 잠긴 부분에 해당한다. 바닷속의 빙산이 수면 위에 빙산보다 더 큰 것처럼 계율을 잃어버리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지하기 어렵다. 부처님의 계율은 기독교식 절대자가 주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불교의 계율은 본질적으로 학습계율로서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스님들이 신자에게 율장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계율 자체가 촘촘해서 일부분이 부분적으로 공개될 때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가자라도 계율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읽을 필요가 있다."
-향후 번역 계획이 있다면.
"4부 니까야는 완역했고 쿳다까니까야 안에 포함되는 경전 몇권만 남았다. 그 가운데 밀란다왕문경을 먼저 번역하고 비유경, 불종설경, 불소행찬, 천궁사, 아귀사 등을 차례로 번역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불교하면 행복해지기 위한 '명상'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諦)를 무시하는 것이다. 즉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진리(집착이 고통을 낳고 연기법과 팔정도를 통해 해탈에 이른다)에서 삶과 고통이 떨어질 수 없다는 고성제의 가르침(苦聖諦)을 외면하는 것이다. 불교는 웰빙이 아니다 그 이상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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