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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의 유통피아]평화의 댐과 아스파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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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7. 07. 06:30

괴담은 식음료 회사의 목을 노린다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무리는 누구인가
최성록 기자


 # 1986년 가을의 기억이다. 온 가족이 TV를 보고 있는데 정규 방송이 멈추고 비장한 음악과 함께 뉴스 속보가 나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휴전선 근처에 금강산 댐을 만든다고, 물을 모았다가 한 번에 방류할 경우 서울이 물바다로 변하고 여의도 63빌딩의 3분의 1까지 잠긴다는...경악할 내용을 대학교수가 매우 비통한 표정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나, 가족, 친구들이 한 순간에 수장될 수 있다는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았다. 바로 그 주에 북한을 규탄하는 웅변대회가 학교에서 열렸다. 금강산 댐에 대항하는 평화의 댐을 만들기 위해 국민들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신문, TV, 잡지에 연일 나왔다. 성금 활동에도 불이 붙었다. 많은 국민학생들이 봉인됐던 돼지 저금통을 깨부셨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자유민주주의를 수몰시키려는 빨갱이들아, 너희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 우리들이 나선다. 대통령이시여,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평화의 댐 총 공사비는 1700억원이었는데, 이 중 639억여원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됐다고 한다.


# 시간이 지나 이 모든 게 허구로 밝혀졌다. 지금이야 검색 한 번에 '서울 수몰설'이 말도 안되는 논리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정부가 국민을 속일리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에는 심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처구니 없는 헤프닝으로 귀결되는 사례는 많다. 특히 식음료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말도 안되는, 논리도 빈약한 누군가의 한 마디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1989년. 검찰은 "일부 라면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쇠기름)를 써서 식품을 생산하여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시작은 검찰청으로 날라온 익명의 투서 한 장. 사실관계를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라면회사는 순식간에 대역죄인이 됐고 판매량도 꼬꾸라져 존폐를 걱정해야만 했다.

보건사회부는 "우지는 식용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를 했음에도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다.

라면을 튀기는 데, 동물성 기름이 아닌 팜유같은 식물성유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 때보다 라면의 맛의 질은 얕야지고 떨어졌다.

글루탐산나트륨(MGS)는 어떠한가.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이 진작 밝혀진 지 오래다. 하지만 업체들 간 치킨게임, 과장시킨 TV 프로그램, '화학조미료'라는 단어로 포장한 언론…이 3박자로 인해 소비자들에게는 "MGS는 유해한 물질"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히게 됐다.

외국에서 먹는 국산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국인들에겐 MGS에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 과자, 막걸리 등에 들어가는 한 첨가물 때문에 2023년 7월,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아스파탐을 발암물질 2B군으로 분류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매대에서 아스파탐이 들어간 제품을 치우는 것은 물론, 생산 공정까지 바꾸겠다는 기업들도 생겼다. 제로콜라 역시 공격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이 연구소가 2B보다 한 단계 더 높은 2A로 발표한 소고기와 돼지고기, 65°C 이상의 뜨거운 물에 대해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식음료 기업에겐 유독 강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TV와 같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이 가격을 올리면 침묵하지만 라면·과자 가격이 오르면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로 치부한다.

이들이 그동안 해온 악행 때문에? 아니면 만만해서?

문제는 국민 건강을 두고 괴담을 양성하는 이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과 국민들만 피해를 본다. 괴담을 뿌리는 이들이 노리는 건 소비자들의 '불행'인가, 식음료 기업의 '목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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