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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문화路] 100여명 사연으로 만나는 ‘아버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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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5. 30. 16:56

국립민속박물관 '아버지'展 "관람객 눈물 쏟게 만드는 전시"
7월 15일까지..."내년엔 어머니 전시 선보일 것"
딸의 결혼식에서 쓴 모자 국립민속박물관
딸의 결혼식에서 쓴 모자./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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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함암치료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감추고자 제 결혼식에서 쓰셨던 모자입니다. 위암으로 투병하시며 두 다리로 서 계실 기운조차 없던 때, 딸의 결혼식에 손 꼭 잡고 입장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날 걷는 연습을 하셨던 아빠. 온 힘을 다해 걸어가신 그 길이 얼마나 힘에 부치셨을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아버지'에서는 딸 황경선(43) 씨의 사연이 담긴 결혼식 입장 사진과 아버지의 모자를 볼 수 있다. 전시에는 170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을 묵묵히 사랑한 144명의 아버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의 가족 사랑'을 주제로 한 이번 특별전은 100여 명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각자의 사연과 사진, 물건 등을 공개하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자리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온라인으로 시민들의 사연을 모아, 그중 몇몇으로부터 추억이 담긴 물품들을 받았다.

변정숙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한 팀원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면서 "전시를 보며 아버지를 생각해보고 가족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에 소개되는 물건 중 하나인 '아버지의 레시피'도 사연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비가 오면 고추장떡이나 수제비를, 일요일에는 김치볶음밥이나 부대찌개를 해주셨습니다. 그 맛이 아직 생생한데, 다시는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워요. 그때를 추억하며 어슬프게나마 아빠의 레시피를 흉내 내 봅니다."

군에 간 아들에게 쓴 편지 국립민속박물관
군에 간 아들에게 쓴 편지./국립민속박물관
군에 간 아들에게 쓴 한 아버지의 편지에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모자란 내 아들"이라고 적혀 있고, 또 다른 아버지의 일기에는 "최선을 다하는 습관과 부지런함,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집념, 아빠가 너에게 물려주려는 재산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빠인 내가 실천으로 보여야지"라는 다짐이 담겨 있다.

변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준비하며 참여자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라고 하니 처음에는 "할 말이 없다"고 대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와 관련한 기억, 물건들을 묻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참여자들이 말하는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일하느라 집에 없었으며, 흔한 가족사진 속에도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켜내는 마음으로 집밖 일터에 있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의 아이들을 찍어 주느라 사진 밖에 있었다. 변 학예연구사는 "가만히 들어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서 "이번 전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계속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아버지 전시 전경 전혜원 기자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아버지' 전시 전경./사진=전혜원 기자
전시장 한 쪽에는 '일하는 아버지'라는 진열장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는 사회에서 자리를 지키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머리를 숙이고, 말을 삼키고, 뜻을 꺾어야 했던 아버지의 흔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가 가져오던 월급봉투부터 뒤축이 닳아 해진 낡은 구두, 출근용 서류가방, 퇴근길 아버지가 들고 오던 기름 묻은 통닭 봉투, 아버지가 피던 담배와 소주까지 함께 전시돼 있다.

이밖에도 김교철이라는 인물이 1934년 2월 8일 아들의 돌을 기념해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과거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라는 격려 편지, 아이의 성장에 맞춰 기록한 육아 일기장 등이 눈에 띈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내년에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며 "가정의달인 5월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7월 15일까지.

전시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아버지' 전시 전경./국립민속박물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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