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명외교관 탈레랑의 명언, “역량 키우려면 허세 버려라!”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onelink.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01010000401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0. 01. 17:59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스탕달의 소설 '적(赤)과 흑(黑)'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가톨릭 성직자에서 정부관료로 변신한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은 대외관계에 관한 많은 경구를 남겼다. 그는 나폴레옹 정부에서 외무장관이었고 워털루의 패전 후 유럽의 전후처리를 위해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개최된 '빈 회의'에서 프랑스를 대표했다.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전승국 사이에서 패전국 프랑스의 영토분할 위기를 모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서 프랑스 외교관의 사표가 됐다.

그는 외교관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언변에 스스로 도취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도취가 균형감각을 잃고 부정확한 언행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량배양을 가로막고 오히려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빈 회의'는 승전국들의 자만심과 이해관계가 얽혀 쉽사리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회의는 포도주가 곁들인 주연(酒宴)과 무도회(舞蹈會)가 주가 되어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되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 역시 탈레랑의 외교전술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러한 와중에 강대국의 세력균형 정책을 이용해 최대한 국익을 지킬 수 있었다.

탈레랑의 경구는 '허세(虛勢)'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발끝으로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없다는 말처럼 허세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국의 저명한 외교관 해롤드 니콜슨도 이렇게 경고한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협상 상대자가 던지는 아부나 공격에 쉽게 넘어간다. 허세는 임무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지나친 사적 견해를 갖게 하며 심하면 눈에 띄지 않지만 조심스러운 절충보다 화려하면서 실속 없는 승리를 좋아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허세는 대사로 하여금 어떤 중요한 계제에도 통역자의 조력을 받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자신이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또한 자신이 외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외교부는 맹목적이고 완고하여 자기의 충고를 무시한다는 무서운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라고 했다.

실제로 외교현장에서는 민감한 주제의 안건을 전문가와 통역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혼자 하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체면 때문에 되묻지 못해 생기는 문제도 나타난다.

그리고 허세 부리기에 익숙해지면 부정확하거나 성급해지고 감정적이 되며, 심지어는 허위와 같은 여러 악습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외교의 실수는 흔히 있지만 그중에도 개인적인 허세가 가장 공통적이고 불리하다는 것이다.

경고는 계속된다. "외교관은 보통 인간적인 허세가 점차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의전과 역할, 화려한 저택, 시종 그리고 고급식사와 연회 등 외교계의 생활과 제도는 모두가 인간성을 점차로 경화시킨다"라면서 허세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외교관은 누구나 하급 직원 시절로부터 시작해 고위직까지 직책과 연륜을 거친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결점을 말해 주는 사람이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허세에 빠지지 않도록 누군가 옆에서 쓴 약과 같은 역할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외무 관료뿐만 아니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다.

개인의 허세가 모이면 국가의 허세로 이어진다. 우리의 근현대사에 겪었던 수차례 위기의 상당 부분은 허세와 관련되어 있다. 조선말 양반의 허례허식과 체면치레는 지도층의 현실감각을 둔감하게 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를 불러오고 주변국들에는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주었다.

그리고 국력의 여러 요소 중 일부만을 보고 과대평가하거나 자의적으로 판단하도록 만든다. 한국전쟁 직전의 북진통일론의 오판이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평가를 받은 1997년 IMF 외환위기도 그러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국력의 급격한 상승을 이룩한 나라는 외국의 칭찬에는 쉽게 도취하고 비판이나 충고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외적 성장에만 주목해 후발 국가들의 잠재력을 간과하고 우월감에 빠질 수도 있다. 세계사 속에는 이 때문에 오히려 나라에 위기를 초래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그들과의 대화를 위한 것이지만 그들끼리는 우리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한 세대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흔히 한국은 인재밖에 가진 자원이 없다고 말하듯 펀더멘털로 불리는 기초역량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국력의 구성요인 중에는 아직 평가지수가 낮은 것들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와 여야 정당들은 여론이나 선거를 의식해 가급적 자신의 실수와 약점은 보이려 하지 않고 장점만 부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뉴스 산업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독자의 만족감이 높은 정보만을 주로 제공하는 편향된 보도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국가역량을 키우고 축적하기 위해서는 '자기도취'와 '허세'에 빠지지 않고 지피지기(知彼知己)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기(知己)는 지피(知彼)보다 더욱 어렵기에 냉철한 자기점검은 필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