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중동평화과정의 소거(消去)와 확전의 함정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onelink.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3101001786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0. 31. 18:11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 키프르(Yom Kippur) 속죄절이 지나고 하마스 지도자 신와르가 가자지구에서 폭살되었다. 그리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카이사레아의 네타냐후 총리 사저를 비롯해 하이파와 카르멜 지역을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확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가자 전쟁을 장기화하면서 피랍자 구출과 하마스 박멸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란과의 전면전은 가자의 하마스나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10월 26일 이란에 대한 보복 공격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제1단계 차원의 방법과 강도로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문제의 본질은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후 여러 차례 중동전으로 발생한 100만여 명의 팔레스타인 전쟁 난민과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고원 반환요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협상의 상대편에는 이스라엘의 생존권 보장이 있다.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995년 오슬로 협정 II 이후 중동평화과정(Middle East Peace Process)은 중단된 상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잦은 무력충돌과 민간인 테러 그리고 정착촌이 확대되면서 본질적인 안건은 방치되고 문제는 복잡해졌다. 국제사회가 힘에 의한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점차로 확전의 함정에 함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랍국가 간에도 갈등이 발생해 말콤 H. 커(Malcolm H. Kerr) 같은 학자는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중동냉전보다 아랍 내부의 아랍냉전이 더 풀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요르단과 레바논에서 유혈투쟁을 벌였다. PLO는 레바논 남부와 튀니지로 도피했고 이스라엘은 이 틈새를 이용해 어부지리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2020년 8월 트럼프 행정부 주재로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협상에서 소외된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기습 공격해 가자 전쟁을 시작했다.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워 아랍국가들의 이스라엘과의 평화 흐름을 막으려는 극단적 선택이다. 오일 머니로 강화된 군사력을 보유한 아랍왕정국가들의 지원을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미국산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해 운용 중인 이들 국가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면 차기 중동전이 발발할 경우 이스라엘의 승리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이스라엘의 안보전략은 '삼손의 선택(The Samson Option)'으로 불리는 약 90기로 추정되는 핵폭탄 사용을 거론하게 되고 안보 딜레마에 빠진 이슬람 형제국가 이란과 파키스탄 간에는 핵 협력도 강화될 것이다.

중동전쟁은 종교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1973년 10월 6일의 제4차 중동전과 2023년 10월 7일 가자 전쟁도 욤 키프르에 발발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세계관과 역사 인식이 다르고 서구 문명에 대한 평가 역시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역사의 방향에 역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도 그 같은 증표 중 하나다.

현재까지 중동전은 양측이 군사적으로 대인 대물 목표를 공격했다. 그러나 종교적 정체성을 갖는 목표물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전례 없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아랍 22개국에 더해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의 참전여론을 결집할 수 있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예루살렘 알악사(AlAqsa) 모스크가 대표적이다. 기원후 622년 이슬람 탄생 초기 제1의 성소였다가 이후 메카와 메디나에 자리를 내주고 제3의 성소가 된 곳이다. 통곡의 벽 언덕 위에 세워졌고 과거에 여러 차례 유대교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폭파 시도가 있었다. 이 장소에 솔로몬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2000년 유랑생활 중의 숙원이었다.

이곳의 파괴는 아랍뿐 아니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을 하나로 묶는 결과가 된다. 이 때문에 이슬람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자폭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팔레스타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영화 '월드 워 Z' 속의 예루살렘 폭동처럼 종교적 열정에 이성을 잃은 아랍인들과 이스라엘군 간의 대규모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중동전쟁이 성경에 등장하는 아마겟돈처럼 세계적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2000년에 걸친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의 수난은 지금도 반셈주의(Antisemitism)의 잔재로 남아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고난 역시 이스라엘 민족이 유럽에서 받은 스티그마(Stigma)를 이들에게 투사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가 체화된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루살렘의 상징처럼 보이는 황금빛 지붕의 바위의 돔(Dome of Rock)은 100평 남짓한 규모의 건물이다. 안에는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가 시조로 모시는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번제로 바친 바위가 놓여있다. 이슬람에서는 번제물로 선택받은 자가 유대인 이삭이 아닌 아랍인 이스마엘로 믿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되어 있다.

자신들만이 선택된 자들이며 절대선(絶對善)임을 주장하는 욕망과 오판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것이 중동의 정치발전을 저해하면서 리더십의 세대교체를 가로막고 닫힌 사회로 만든다.

21세기의 4반세기에 서 있는 지금은 추동력을 잃은 중동평화과정의 재개가 절실한 시기다. 세계가 핵전쟁의 위험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도록 대한민국과 유엔회원국들은 중동전쟁의 확산 방지를 위해 총회와 안보리가 기능을 회복하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크다.

전 지구적으로 다수의 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연계되어 진행되고 있고 여기에는 한반도에서의 위기관리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