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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이후 다시 고개 드는 신민중주의(Neopopu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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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26. 18:00

이영조
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신자유주의의 그늘과 신민중주의의 등장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라틴아메리카 각국은 신자유주의, 즉 대외개방형 시장주도경제로 전환했다. 외채협상의 과정에서 IMF가 협상의 전제로 요구한 조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10가지 개혁이 포함되었다. (1)재정적자 축소 등 엄격한 재정관리, (2)퍼주기 축소 등 정부지출 개선, (3)조세개혁, (4)시장금리, (5)경쟁력 있는 환율, (6)무역자유화, (7)외국인투자 자유화, (8)국유기업 민영화, (9)규제 혁파, (10)재산권의 법적 보장.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은 거시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그 본질상 분배불평등의 심화와 사회복지의 후퇴를 내장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수출경제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외적 취약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게다가 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경제성장률이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력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신자유주의모델의 실적부진은 분배를 내건 선동정치가 출현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민중주의적 정치스타일은 이미 문민정부가 재등장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바 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아르헨티나의 사울 메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등이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들의 정치스타일은 과거의 카리스마적인 민중주의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한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민중주의자들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조직노동이었다면 신민중주의자들의 지지기반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증가한 비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이었다. 흔히 신자유주의정책은 민중주의와는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집행과 더불어 민중주의가 재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구 민중주의자들의 가상의 적이 외국자본이었다면 신민중주의자들의 가상의 적은 기득권층이다. 이들은 기득권층을 공격함으로써 밑바닥의 민심을 훑었다. 기득권층만 몰아내면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팔았다.
◇민중주의의 본질

민중주의라고 하면 흔히 경제전략으로는 수입대체산업화, 지지층으로는 조직노동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런 것들은 최초 발생기의 주어진 상황에서 비롯한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일 뿐으로 보인다. 상황이 달라지면 구체적인 정책이나 지지기반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헝가리와 같이 동떨어진 나라에서도 오늘날 민중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중주의는 역사적 그리고 지역적 특수성을 뛰어넘는 특질들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민중주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도 결합할 수 있고 민주적인 정치체제와도 결합할 수 있다. 이념 스펙트럼에서는 좌(左)로 혹은 우(右)로도 쏠릴 수 있다. 애당초 민중주의는 라틴아메리카 판 '제3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평등지상주의적 공산주의의 비(非)자유 사이의 '샛길'로 모색되었다는 점에서 동시대에 등장한 스웨덴의 복지국가(이것을 스웨덴 사람들은 중도 Middle Way로 불렀다)와도 궤를 같이한다.

일반화해서 정리하면, 민중주의는 크게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면에서는 세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제도적인 지위보다는 개인의 매력이나 특질에 의존하는 지도자 개인이 이끈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민중주의를 보면 언제나 상징적인 인물이 있다. 민중주의가 얼마나 인물중심적인가는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페로니스모(아르헨티나), 바르기스모(브라질), 차비스모(베네수엘라) 하는 식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둘째, 지도자는 지지층에 직접적 호소한다. 정당이나 이익단체와 같은 기성의 매개조직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기왕의 조직을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 조직은 지도자의 개인적인 도구에 불과하며 제도화의 수준이 낮다.

셋째, '반(反)민중'적인 가상의 (혹은 실제의) 적을 설정한다. 이질적인 지지층에 의존하는 선거연합이기 때문에 누가 '민중'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이런 내부의 이질성 때문에 '누가 민중인지'는 '누가 민중이 아닌지'를 통해 반사적으로 결정된다. 발전의 주류에서 소외되어 왔지만 새롭게 동원이 가능한 층이라면 언제라도 민중에 편입될 수 있다.

끝으로 경제운영에 있어서는 민중주의는 성장과 소득재분배의 동시 달성을 강조하고 적자재정과 인플레이션의 위험, 외부적 제약, 비시장적 정책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반응은 대체로 무시한다. 민중주의 경제정책은 많은 경우 민중주의 연합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철근과 시멘트에 머문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상당히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가 여전히 비교적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배를 하려면 적자재정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적자재정으로 인한 통화팽창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낳는다.

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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