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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마을운동 대 천리마운동’ 왜곡한 교과서 퇴출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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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08. 18:12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역사는 단순히 과거만의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역사는 사실(fact)에 기반한 기록이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에서 잘못을 찾아 내일의 나침판으로 사용할 수 있고,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발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왜곡된 편린들(data)이 입력되면 역사 왜곡이 상처가 깊어진다. 이는 국가의 정당성과 정체성(identity) 훼손은 물론 국가 정신마저도 오염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직도 남북이 한반도 정통성(legitimacy) 확보를 위해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히 북한의 선전·선동으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된 상황 시정도 어려운 숙제다.

2025년 새 학기부터 초중고 역사 교과서 중 일부가 노골적으로 친북 정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즉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굳건히 한 건국과 호국의 성과는 독재(?) 프레임으로 희석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성공적 산업화는 노동착취와 부자를 옹호하는 틀로 치환하고, 독재(?) 프레임만 강조되고 있다. 반면 김일성의 실정(失政)에는 철저히 눈을 감으면서 업적은 과대 포장하고,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2025년 역사교과서에서 북한의 천리마운동과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교·기술한 대목이 눈에 띈다. 즉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는 '유신체제'를 강화·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동원한 운동으로 폄훼하고 있다. 그러나 천리마운동에 대해서는 '천리마 속도'로 전후복구와 경제성장을 이룩한 운동이라고 미화하면서 천리마운동이 가진 제도적 속성과 운동방식의 한계로 인해 파생된 부정적 유산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북한의 천리마운동의 유사점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노력동원으로 전 국민운동차원으로 확산시키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운동의 특성, 추진 과정 및 목표, 결과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체제(제도)의 특성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새마을운동은 강한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의 특성, 천리마운동은 강한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의 특성이 내재한 점이 큰 차이다. 즉 포용적 제도는 국민을 위한 제도라면 착취적 제도는 오직 독재자 1인을 위한 제도다.
새마을운동은 1960년대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된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향상을 목표로 한 사회개발운동이었다. 즉 새마을운동은 시장경제체제에서 '근면·자조·협동'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농촌발전에 초점을 둔 점에서 포용적 측면이 확인된다.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은 시장경제 기반 아래 '참여의 자율성'과 '엄격한 차별화' 때문이다. '참여의 자율성'은 경제적 능력과 환경을 고려한 성과를 얻는 촉매제가 되었고, '엄격한 차별화'는 성과에 따른 엄격한 보상체계를 보장함으로써 높은 경제적 성과가 달성됐다.

반면 천리마운동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에서 착취적 요소가 확인된다. 즉 이 구호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김일성과 노동당을 위해 헌신하라는 암시이자 무언(無言)의 압박이다. 특히 천리마운동이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결부하면서 중앙계획 당국의 지시와 강제에 의해 작동하는 구조로 정착되고, 국가의 경제운용이 더욱 착취적 제도로 고착되었다. 이처럼 지시와 강제가 작동하는 착취적 구조에서 노동자의 참여는 소극적·피동적일 수밖에 없고, 경제운영의 경직성이 더욱 공고화되면서 착취구조가 더욱 공고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런 구조에서 결코 경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이 천리마운동이 새마을운동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 줬다. 천리마운동이 시작된 지 65여 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아직도 극심한 부족경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천리마운동 실패의 확실한 증거다. 천리마운동의 착취적 특성, '계획경제의 획일성, 경직성, 대외폐쇄성, 물질적 유인의 결여' 등의 요인 때문이다. 물론 천리마운동의 초기에는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지속될 수 없는 구조였고,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족쇄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은 은폐한 채 천리마운동이 마치 성공한 것처럼 기술하는 것은 북한의 주체사관을 정당화해 줄 위험성이 우려된다.

역사기술에서 조작·과장도 문제지만 사실 왜곡도 문제다. 특히 북한의 주체사관에 입각한 역사기술은 더욱 큰 문제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사실 왜곡을 시정하기보다는 조장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 우려된다. 일부 좌파단체와 학부모들이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씌워 학교를 상대로 좌파교과서를 채택할 것을 윽박지르고 있다. 이들은 집회와 기자회견에 이어 1인 시위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위력 시위는 학교 당국이 교과서 선택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좌파성향의 교과서 채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특히 학교 현장이 종북 정향의 삐뚤어진 모습에서 역사 왜곡의 내일을 보는 것 같아 우려된다.

그러나 왜곡 폄훼된 역사교육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이를 위해 사실 바탕의 검정지침 마련과 검정체계 정비로 왜곡을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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