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건전성 약화·주가 하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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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세정책과 경기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 등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역성장하는 가운데, 금융그룹은 호실적을 기록 중이지만, 표정은 어둡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등 정부의 금융정책 추진에 맞춰 은행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정부의 내놓은 청구서는 매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만간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관련 과징금에 담보인정비율(LTV)과 국고채 입찰 관련 담합에 대한 과징금도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결국 은행 펀더멘털 약화와 기업가치 하락, 밸류업 추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배드뱅크 출연과 국민성장펀드 참여, 교육세 인상 등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과 세제개편으로 인해 은행들의 부담은 연간 조단위가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기연체자 채무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 재원 8000억원 중 은행권이 3500억원가량 부담할 것으로 전망되고, 첨단·혁신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는 150조원 규모의 민관합동펀드인 국민성장펀드에도 금융권이 5년간 20~30조원을 출자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해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수익 1조원 이상 금융사에 대한 교육세율 인상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은 연간 1000억원 이상 추가 세금을 떠안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정부 들어 은행권이 받은 청구서는 각사별로 조단위에 이른다는 얘기다.
은행의 고민은 더 있다. 수조원 규모의 과징금 고지서가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객 피해가 발생한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로 인해 은행들에게 부과될 과징금 규모는 7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과징금 부과 기준을 판매액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은행권 ELS 판매액은 16조원에 달한다.
은행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 ELS 관련 고객 피해에 대해선 은행권은 자율배상을 적극 시행했고, 홍콩 H지수 ELS 판매규모가 컸던 국민·신한·농협·하나·SC제일은행 등 5대 은행의 자율배상 동의율은 96%를 넘어섰다. 이들 은행이 자율배상으로 지급한 금액만 1조3000억원이 넘는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고객 피해 회복을 위해 자율배상을 실시했음에도 수조원의 과징금을 내게 된다면 이들 은행은 재무적 건전성 등 기업 펀더멘털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LTV와 국고채 입찰과 관련해서도 경쟁당국은 담합으로 보고 있다. 경쟁당국이 LTV 관련해서는 1조원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은행권에서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LTV 관련해 경쟁당국이 판단하는 것처럼 담합이라면 은행들이 이득을 봐야 하는데, 오히려 대출 한도를 낮춰 은행 입장에서 손해"라며 "ELS 판매 재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징금 기준을 수익이 아닌 판매액으로 판단해 과도한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ELS 판매가 재개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과도한 과징금 부과는 은행들의 경영에 큰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LS 관련해서는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과징금을 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특히 금융당국 가계부채 관리 정책과 연관된 LTV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제재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우려는 시장에서 먼저 반응하고 있다. 주요 금융그룹 주가는 8월 들어 하락세를 나타냈고, 은행 지수인 KRX은행은 8월 한달간 3.20% 빠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1.8%가량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은행주 하락세가 더욱 두드러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