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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사법부 비웃는 국정원만의 ‘실사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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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준 기자

승인 : 2026. 04. 30. 04:00

증명사진
"재판에 제출되지 않은 문건들이 다수 발견됐다."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 이종석 국가정보원(국정원)장은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수사에 검찰과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해당 의혹에 유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2025년 6월 대법원은 대북 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7년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달러 중 300만달러를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사례금'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원장은 판결의 증거인 북한 공작원 리호남의 '2019년 필리핀 방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리호남의 부재를 증명할 정보 등 재판에 제출되지 않은 '객관적' 문건들이 다수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28일 이 원장을 대신해 국조특위 종합청문회에 참석한 김호홍 국정원 2차장 역시 "아직 법원이나 검찰에 제출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우리만 아는 정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법정이 아닌 국회에서 이 '증거'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사법부가 요청하면 답하겠다는 입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백문(百聞)'만 존재할 뿐 국민들을 수긍하게 만들 '일견(一見)'이 보이지 않습니다.

법원 판결의 배경에는 리호남의 필리핀 방문 등에 관한 사건 관계자들의 일관된 증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용철 쌍방울 전 부회장이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밝힌 "2019년 7월 김성태 전 회장이 필리핀에서 북한 공작원 리호남을 만나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으로 70만달러를 줬다"는 발언도 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된 관계자들의 진술과 물적 증거의 '상호 보완성'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단순히 한쪽의 편을 든 게 아니라 제출된 증거들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신빙성 있는 진실을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법부의 판단은 법정 증거주의 원칙을 통해 재판장에서 엄격히 가려진 결과물입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 하더라도 사법부의 최종 판결에 관여할 권한은 없습니다. 판결이 끝난 사안에 대해 정보기관이 나설 수 있는 순간은 '재심'이 청구됐을 때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합법적' 기능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완벽한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입니다. 이를 '법치주의'라고 부릅니다. 재판부가 증거와 정황을 토대로 진실을 판가름할 때 국정원은 왜 자신들만 아는 '핵심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이제서야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에 대해선 이 원장을 비롯한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결정을 정치권과 정보기관이 번복하려는 상황에서 삼권분립의 근간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원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인물입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편파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가 국정원장직을 선택한 이상 적어도 이 사안 만큼은 중립을 유지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원장은 국조특위 참석을 요구하는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지도, 증언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사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탐구함)' 정신으로 오로지 팩트에 기반한 수집·분석활동을 전개해야 하며, 오직 '국익'의 기준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정원의 운영 제1원칙 '정치적 중립성'과도 직결돼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의 본질적인 역할 수행을 기대케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사구시는 '그런 게 있다'는 국정원의 비밀주의 앞에서, 국익은 삼권분립을 흔드는 최근 행보에서 정확히 역행하고 있습니다. 정보기관이 정권의 안보를 위해 사용될 때 문민 통제의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는 뼈저리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국정원은 그러한 '흑역사'를 청산하는 데 어떤 정권의 국정원보다 앞장 서려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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