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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체인(三體人)’이 중동전쟁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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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8. 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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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삼체(三體·3 Body Problem)'는 중국의 작가 류츠신이 지은 3부작 SF 소설로 넷플릭스에 영화화됐다. 단단한 우주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2015년 휴고상 장편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될 만큼 인정받았다. 과학소설이지만 인류는 지구를 관리할 자격이 있느냐는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천체과학자인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의 지식인 부친을 때려죽인 인간군상을 저주하면서 외계의 삼체인에게 인류를 절멸시켜달라는 전파를 우주로 보낸다. 이후 삼체인은 지구를 향해 출발하면서 '너희는 벌레다(You are Bugs)'라는 메시지를 보내 인류를 위협한다. 20세기 후반기에 벌어진 문화대혁명은 9억 중국인의 일상생활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든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모택동 어록을 절대선으로 믿은 홍위병의 군중심리적 폭력의 결과로 공산주의의 또 하나의 실패 사례로 남았다.

사상보다 강한 것은 종교다. 신앙이 정치와 결합될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의 종언'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위협이 사라진 후의 서구에 대한 마지막 도전으로 이슬람을 들었다. 역사에는 사상과 종교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기독교 국가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란전쟁에서도 협상 가능한 최소한의 인도적 공간은 보이지 않고 미숙한 외교와 조급한 무력 사용이 반복되는 중이다. 서로가 신은 자신의 편이라고 주장하는 중에 7월 4일 워싱턴에서는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테헤란에서는 하메네이 장례식에 수많은 군중이 모였다. 국가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란인들의 원색적인 감성 표현이 집단지성을 의심하거나 세뇌 상태로 보일 수도 있다. 역으로 이란이슬람공화국에서는 미합중국은 하나님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연설하는 기념행사를 보면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팅턴(S. Huntington)이 '문명의 충돌'에서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과 이슬람의 편협함 그리고 중화민족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같다.

영국과 프랑스의 중동분할 작업이 한창이던 1904년 매킨더(H.J. Mackinder)는 '역사의 지리적 추축(Geographic Pivot of History)'을 발표하면서 예루살렘과 메카를 세계의 정신적 중심지로 평가했다. 성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는 '예루살렘 증후군(Jerusalem syndrome)'으로 불리는 선지자적 감정 때문이다. 자신이 신의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믿는 권력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와이츠만은 회고록 '시행과 착오(Trial and Error)'에서 구약성서 느헤미야서를 읽으면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준비한 이야기를 남겼다. 유대계 영국인 금융 자본가 로스차일드(L. W. Rothschild)를 통해 영국 정부의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문안을 사전 조율한 비사다. 와이츠만은 밸푸어의 뒤를 이어 1919년 10월부터 1924년 1월까지 외무장관을 역임한 커즌(G. N. Curzon)과 함께 문안을 기안했고 1917년 7월 18일 로스차일드가 밸푸어 외무장관에게 초안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차례 수정을 거쳐 11월 2일 밸푸어 선언이 발표됐다.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이스라엘의 건국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유대민족의 굳건한 신앙심이 있었다. 1916년 아랍 독립전쟁을 시작하면서 메카의 지도자 알리 후세인(A. Hussein) 역시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내세워 아랍 민족을 규합했다. 그리고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 McMahon)과의 10통의 왕복 서한에서 아랍의 영토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조상의 신앙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20세기 세계는 두 차례의 전쟁으로 역사상 최대의 참상을 겪었다. 1914년 7월 시작해 4년 3개월 간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약 2400만명이 살상되었고 25년 후에 재발한 세계대전에서는 6년간 4500만명 정도가 살상됐다. 핵전쟁의 반성과 평화의 요구로 국제사회는 유엔을 창설하고 유네스코 헌장을 선언했지만, 인류는 또다시 역사의 교훈을 잊은 듯 보인다. 인류를 심판하러 온다는 삼체인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트리니티(Trinity)와 비슷한 이름이다. 1945년 7월 오펜하이머의 최초의 핵폭탄 실험 코드명과 같다. 결국 트리니티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극단적 전투행위와 난징 학살을 저지른 일본제국을 파멸시켰다. '삼체'의 주인공 예원제는 인간이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아인슈타인이 천국에서 겪은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답했다. 천재 물리학자이며 바이올린 연주가였던 아인슈타인이 신이 음악을 연주하는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신으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는다는 이야기를 넣은 것이다.

21세기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만큼 인류의 정신문명은 진보하지 못했고 오히려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현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고 경고한다. 평화를 말하는 목소리도 순진한 이상주의로 치부하는 비관적 경향이 편만하다. 그러나 시간과 과정을 요구하는 외교의 불편함을 외면하고 군사력만을 신봉하는 현실주의의 손쉬운 선택이 초래한 역사적 과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한국과 국제사회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질문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삼체인이 지구에 도착한 후 벌레가 아닌 인간성을 잃지 않은 존재에게는 살아갈 자격을 인정한다는 선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도 좋을 것이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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