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칼럼] 불타는 공사현장의 뼈아픈 교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onelink.asiatoday.co.kr/kn/view.php?key=20180724010012337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18. 07. 25. 16:54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제14대_한승헌_원장(최종)
한 승 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최근 국내 행정도시 한복판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큰불이 났다. 지하 주차장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던 중 인화성 가스에 불길이 옮겨붙으며, 3명이 희생되고 중상을 포함해 4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보도다. 장마철이기에 지상에 쌓여있던 건축자재를 지하주차장으로 옮긴 것이 불을 더 키웠다고 한다. 세종시는 얼마 전 국제안전도시 인증을 받은 가장 첨단화된 도시이다.

공사현장에서는 페인트,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등 인화성 도료나 가연성 단열재 등, 불에 아주 잘 타는 물질들이 산재해 있다. 용접 등으로 발생한 불티가 공사 현장에 쌓여 있는 인화성, 가연성 물질에 옮겨붙으면서 대형사고로 이어져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건축물 공사현장은 소방 설비가 설치되기 전이거나 작동을 정지시켜 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단 불이 나면 열기와 유독가스로 대피나 내부진입이 어려워 불을 끄거나 구조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돌이켜보면, 국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건설현장에서는 4명이 희생되고 25명이 부상하는 불이 나 광화문 일대를 짙은 연기로 뒤덮은 바 있다.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서울 구로디지털 단지 화재 등 많은 사상사를 낸 공사장 화재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 유럽, 중국과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도 비슷한 건설공사장 화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사고가 나면 우리는 흔히 묻곤 한다. 사고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일단 사고가 나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단순히 사고의 인과관계만을 따져 사고 현장 또는 사고 시점에 가장 가까이 있던 작업자를 찾아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흔히 말하는 인간 오류다. 하지만 불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불에 타는 재료, 불을 붙일 수 있는 온도 또는 화원, 재료를 태우는데 필수적인 산소가 그것이다. 이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불은 커질 수 없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은 사고의 잠재적 원인과 예방을 스위스 치즈 모형을 이용해 설명한 바 있다. 대개 치즈는 굳어지는 과정에서 공기구멍이 생긴다. 이것을 자른 뒤 늘어놓으면 공기구멍이 나란히 놓여 젓가락이 그 구멍을 쉽게 관통할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결함(치즈의 구멍)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구멍들을 통해 일련의 사건이 나란히 놓이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치즈 구멍이 나란히 놓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젓가락이 쉽게 통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치즈를 한 장 끼워 넣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 또는 시스템이 필요하단 얘기다.

국내외 공사장 화재안전 대책을 들여다보면, 화재예방 점검표를 만들어라, 화재감시자를 배치해라, 화기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 전에는 위험물과 가연성 물질 등을 제거하고, 불꽃 등 비산 방지조치를 하라는 등 인간오류를 막기 위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규칙과 규정은 다 되어 있는데, 작업자가 지키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공사장에서 불은 계속 불타오르고 있는데, 이런 주장만 되풀이해도 되는 걸까? 이제 다른 치즈조각을 끼워 넣을 때다.

마무리 단계의 건설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수차례에 걸친 하도급으로 밀어내기식 공사가 진행되기 일쑤다. 한편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마감을 위한 단열재와 도료가 별 생각 없이 놓인다. 불이 안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전체 공정은 전혀 모르고 단지 본인에게 맡겨진 작업만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는 작업자에게만 의무와 책임을 맡기지 말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공정관리(치즈조각)가 필요하다. 불티와 인화성 또는 가연성 물질이 만나지 못하게 일의 순서를 조정하는 단순한 조치만으로도 휴먼에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건설행정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어려운 시기, 열악한 환경의 건설현장에서 화마에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부상을 당하신 분들께도 깊은 위로를 드린다. 불타는 공사장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 것을 다짐해본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