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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대한 작곡가가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그의 비극적인 운명과 맞닿기라도 하듯, 믿을 수 없는 환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음악계가 베토벤을 기리기 위해 특별히 마련했던 수많은 음악회와 기획공연이 취소되거나 축소됐으며, 아예 그 사실조차 기억할 여유가 없을 만큼 우리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지난 2006년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으로 1년 내내 온 세계가 화려하게 떠들썩했던 것과 비교하면, 암울하기 짝이 없는 작금의 분위기는 두 작곡가의 음악세계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진다.
이처럼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를 지난달말 공연했다. 반복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준비했다가 최근 완화된 단계에 따라 관객들도 공연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한 자리씩 띄어 앉기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온라인으로도 실시간 생중계됐다.
필자는 개막공연을 온라인으로 감상했다. 원래대로라면 제대로 된 무대를 갖춘 전막 오페라를 공연했을 테지만, 공연 규모가 축소돼 콘서트 오페라 형태로 실시간 중계됐다.
엄밀히 말해 징슈필(singspiel)인 이 작품은 베토벤의 청력 상실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인 1805년 빈에서 초연됐고 심도 깊은 수정을 거쳐 1814년 재공연됐다.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 등 기악음악에서 보여준 놀라운 성취에 비하면 베토벤의 성악음악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 편이다. 오페라 역시 이 ‘피델리오’ 한 편을 남겼을 뿐인데, 절대음악의 고차원적 세계를 지향하던 그에게 노랫말을 통해 직설적으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음악극은 어울리지 않는 장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오한 이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구현된 웅장한 음악은 모차르트의 뒤를 이어 소박한 독일 징슈필 장르를 이탈리아 오페라와 대등한 위치로 이끌었다.
이날 타이틀 롤인 피델리오이자 레오노레 역할은 소프라노 서선영이 맡아 예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음색을 들려주었고, 감옥에 갇힌 그녀의 남편 플로레스탄 역은 테너 국윤종이 노래했다. 또한 레오노레가 남장을 한 피델리오인 줄도 모른 채 짝사랑하는 여성 마르첼리네는 소프라노 김샤론, 그녀의 아버지이자 간수장인 로코는 베이스 전승현이 맡았다. 특히 유일한 악역이라 할 수 있는 교도소장 돈 피차로 역할의 바리톤 오동규는 강렬한 연기와 안정된 발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은 징슈필이기 때문에 노래가 아닌 대사부분은 연극처럼 독일어로 말해야 한다. 이날 출연 성악가들 대부분이 독일에서 유학하고 활동한 덕분인지 가창은 물론이고 독일어 대사도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소화해 작품의 격을 높여주었다. 근래 한국 오페라에서 성악가들의 음악적 기량과 실력이 나날이 우수해지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연기나 원어 대사처리 등 음악 외적인 부분의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을 볼 때 우리 오페라의 기반과 저력이 단단해진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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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들의 기량에 비해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지휘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은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 관악파트의 음색은 서곡에서부터 거칠고 투박하게 들려 비교적 매끄러웠던 현악파트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이것이 온라인으로 전달되다 보니 장점은 묻히고 단점은 더욱 부각됐다. 클래식 음악에 있어 음향의 중요성을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온라인 오페라공연에서 시각적 효과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음향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다.
혼란과 좌절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2020년이 하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음악가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끝내 이겨냈고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전 세계를 뒤덮은 오늘날, 베토벤의 숭엄한 음악은 지친 우리에게 실다운 위로를 준다. 동시에 극복해내리라는 의지를 다지게 한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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