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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추정 유물만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 발견됐고 상대적으로 큰 나머지 유물은 주변에서 출토됐다.
유물이 나온 지점은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이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에 속했다. 주변에는 관청인 의금부와 상업시설인 운종가가 존재했다. 하지만 유물이 확인된 곳은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둘 만한 장소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건물터 형태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고 서울 시내에서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택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며 “수습한 유물이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물 매장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었고, 나중에 녹여서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오 원장은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혀서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종로구 청진동·관철동 일대에서 조사를 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한 16∼17세기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려주는 지층)에서 제사용 그릇이나 총통을 일부러 묻거나 도망치면서 버린 듯한 흔적이 나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