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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발굴조사를 통해 근정전 동편에 있는 왕세자 생활공간인 동궁 권역 남쪽에서 길이 10.4m, 너비 1.4m, 높이 1.8m인 네모꼴 석조 구덩이 형태의 화장실 유적을 찾아냈다고 8일 밝혔다.
연구소는 1888∼1890년에 전각 위치를 그린 ‘경복궁배치도’, 1904년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궁궐지’ 등 문헌과 토양에서 나온 기생충 알, 오이·가지·들깨 씨앗을 근거로 석조 유적을 화장실이라고 봤다.
토양에서는 회충과 편충 같은 기생충 알은 g당 1만8200건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부여 쌍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 양주 회암사지 화장실 유구의 토양에서 나온 기생충 양보다 많은 수치라고 했다.
이어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와 목탄·소뼈의 연대 측정 결과를 토대로 화장실을 1868년 만들어 약 20년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복궁 화장실 유적의 특징은 바닥과 벽면을 모두 돌로 마감해 분뇨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고, 미생물을 이용하는 현대식 정화조와 유사한 정화시설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와 빠져나가는 출수구가 설치됐는데,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북쪽 입수구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다.
연구소 관계자는 “화장실에 있는 분변이 물과 섞이면 발효 속도가 빨라지고 부피가 큰 찌꺼기만 바닥에 가라앉는다”며 “분변에서 분리된 오수는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체계는 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분뇨 발효와 침전, 오수와 정화수 배출 순으로 이뤄지는 현대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고 했다.
또한 연구소는 화장실 유적 바로 위에 기와지붕을 올린 건물이 있었고, 경복궁 건물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하는 한 칸이 약 2.45m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가 4∼5칸으로 나뉘었을 확률이 높다고 추정했다. 전통 화장실에서는 보통 한 칸을 또다시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기 때문에 최대 10명이 동시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발견된 화장실 유적은 하급 관리와 궁녀, 궁을 지키는 군인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150년 전 유례가 없던 시설이며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이고 탁월한 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