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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AFP·AP 통신 등에 따르면 그의 개인 변호사인 미셸 고데스트는 반세기 동안 프랑스 영화계를 지탱해온 벨몽도가 파리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1933년 4월 9일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 폴 벨몽도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1960년)를 비롯해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억3000만장이 넘는 티켓을 판매해 프랑스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또한 액션부터 코미디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깡패·경찰·도둑·신부·비밀 요원 등 다채로운 인물도 소화했으며, 알랭 들롱과 함께 1960~1970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남자 영화배우로 이름을 드높였다.
특히 프랑수아 트뤼포·루이 말·장피에르 멜빌 등 1960년대 프랑스 영화 운동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많은 작품을 작업했다. 트뤼포 감독은 “벨몽도는 가장 완벽한 유럽 배우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73회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배우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편 이날 벨몽도의 부고를 접한 각계각층 인사의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동료이자 오랜 친구로 활동해온 알랭 들롱은 쎄뉴스 방송을 통해 “삶의 일부였던 그가 세상을 떠나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라고 비통해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남자로서, 연기자로서 그가 보여준 관대함은 영화사에 몇몇 훌륭한 순간들을 남겼다”며 “고맙습니다, 장폴”이라는 글을 남겼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SNS에 “(벨몽도는)국보였다”며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 모두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