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기자의 와이드엔터]팝의 ‘전설’을 떠나보내며

K팝 열풍 예견한 고(故) 퀸시 존스…그래서 더 아쉬워

지난 3일(현지시간) 향년 91세로 타계한 '팝의 전설' 퀸시 존스는 K팝 열풍을 일찌감치 예언하기도 했다. 사진은 고인이 지난 201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AFP·연합뉴스

팝의 '전설' 퀸시 존스가 지난 3일(현지시간) 향년 9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두 달 여만에 다시 챙겨봤다.

올 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1985년 1월의 어느 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딜런, 신디 로퍼, 폴 사이먼, 빌리 조엘, 케니 로저스 등 세계적인 팝스타 40 여명이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힘을 합쳤던 노래 '위 아 더 월드'의 녹음 현장과 참여했던 스태프의 회고를 담았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스튜디오에 모인 가수들은 쟁쟁한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소화하기 어려운 대목을 정해진 시간내에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우왕좌왕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드라마 '블루문 특급'의 주제가로 잘 알려진 재즈 가수 알 재로는 술에 취해 짖궂은 농담과 애드리브를 난사하고, 스티비 원더는 "'위 아 더 월드'가 아프리카 구호를 위한 곡이므로 스와힐리어를 노랫말에 넣어야 한다"며 고집하는 등 혼란은 극에 달했다.

이처럼 자칫 배가 산으로 향하기 직전의 녹음실 분위기를 바로 세운 주인공은 총지휘를 맡은 존스였다. 10대 후반 트럼펫 연주자로 시작해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편곡을 거쳐 잭슨의 대표작 '스릴러' 프로듀싱까지, 그때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의 백전노장이었던 그는 스튜디오 입구에 '문 앞에 자존심은 두고 오세요'(Check Your Ego At The Door)란 문구를 걸어 참여 가수들의 기강을 미리 잡았다. 이어 경쟁하듯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쏟아내거나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이들을 상대로는 한 명씩 붙잡고 따뜻한 격려과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등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구사하며,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던 녹음 작업을 기적적으로 마무리했다.

40 여명에 이르는 미국 팝스타들이 1985년 1월 '위 아 더 월드'를 녹음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의 모습이다. 개성 강한 이들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은 바로 프로듀서 퀸시 존스(앞에서 두번째 줄 왼쪽 6번째)였다./제공=넷플릭스

모름지기 '위대한 음악 프로듀서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 사례로, 고인의 대단한 면모는 이 같은 실력과 카리스마에서 그치지 않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불 붙기 시작해 방탄소년단(BTS)의 높은 인기와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열풍으로 확인된 K팝 유행의 전 세계적인 지속 가능성을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한국 나들이에서 일찌감치 내다본 선구안도 무척 놀랍다.

그래서일까, 그의 타계는 K팝의 든든한 후견인이 사라진 것처럼 아쉽다. 또 넓게 보면 대중 음악사의 가장 위대했던 황금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아무쪼록 존스가 하늘나라에서도 먼저 가 있는 잭슨과 '스릴러' 만큼이나 멋진 작품을 또 한 번 합작해주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