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준 감독 전권 체제와 유스 일원화 전략, 중장기적 경쟁력을 구축하는 성남FC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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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클럽맨 골키퍼, 성남으로 돌아와 구단을 다시 설계하다
지도자 시절의 행보는 오히려 더 다채로웠다. 영생고와 연령별 대표팀, A대표팀, 그리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무대까지 다양한 클럽과 국가 조직을 거쳤다. 김해운 단장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경험을 흡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자산을 어디에 재투자할지를 고민한 끝에 그는 다시 성남으로 복귀했다.
"선수 때는 한 팀에만 있었지만 지도자로는 여러 조직을 다녔잖아요. 프로팀, 연령별 대표, A대표, 해외 팀까지 다양하게 경험했죠. 그 경험을 어디에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결국 성남이더라고요. 친정팀이니까 책임 있게 바꿔볼 수 있는 여지도 있고, 제 방향성을 실험해 볼 환경적 여건도 있었고요."
그는 성남을 "직장이 아닌 삶의 일부이자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남이라는 조직이 마음에 더 크게 남았고, 축구 인생의 정리 또한 이 팀에서 해야 한다는 확신이 강해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인물이, K리그2 최하위라는 지난 시즌의 성적을 조직적 지표로 삼아 다시 성남의 중장기 전략과 구조개혁 로드맵을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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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운 단장이 전력강화실장으로 내려와 처음 마주한 것은 단순한 성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성남이라는 팀의 조직적 아이덴티티가 사라져 있었다"고 말한다.
"감독대행을 하면서 내부를 보니까, 팀에 대한 애착과 공동체 의식이 거의 없었어요. 감독 교체 때마다 경기 철학이 계속 바뀌고요. 예전에 우리가 K리그 3연패를 두 번 하고 FA컵, 아시아 무대까지 석권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밖에서는 '군대 같다, 규율이 세다'는 말이 있었지만 분명한 색깔이 있었거든요. 그게 완전히 증발해 버린 느낌이었죠."
그는 성남의 전신인 일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이덴티티가 총체적으로 소실됐다"고 평가한다. 팀에 대한 애착이 약화되자 유니폼과 엠블럼만 남았을 뿐, 경기장 안에서 드러나는 브랜드 정체성은 흐려졌다. 꼴찌라는 결과는 그 구조적 침식이 만들어낸 필연적 데이터에 가까웠다.
문제의 핵심은 영입 프로세스와 평가 시스템의 비정형성이었다. "축구계에 오래 있으면서 느낀 게, 항상 문제가 선수 영입에서 터진다는 거예요. 성공하면 조용한데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구조가 반복됐어요. 돈은 썼는데 왜 안 됐는지를 남기지 않으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올해 가장 먼저 한 게 시스템을 문서화하는 일이었습니다."
김해운 단장은 테크니컬 디렉터 제도의 핵심을 "감독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분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 관점을 성남 전력강화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했다. 영입 단계별 보고 체계를 도입하고, 1차·2차 평가서와 3차 후보 리스트로 이어지는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이는 실패 확률을 제로로 만드는 장치는 아니지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개선할 수 있는 조직적 학습 기반을 만드는 시도다.
올해 성남은 축소된 예산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신규 투자 여력이 거의 없었다. 김해운 단장은 기존 외국인 선수 계약을 재조정하고, 부상 선수의 계약을 재협상해 절감된 비용을 새로운 외국인 영입 재원으로 전환했다. 국내 선수는 일정 연봉 이하로 제한하는 비용 통제 기준도 설정했다.
그는 "선수 영입이 성공하면 아무 말도 안 나오지만, 실패했을 때 책임을 명확히 하는 구조"가 올해 구축한 가장 중요한 조직적 과제였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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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운 단장이 올해 변화의 핵심으로 꼽는 대목은 분명하다. 전경준 감독에게 그라운드 안의 권한을 전적으로 맡기고, 프런트는 선을 지켰다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의 가장 큰 차이는, 전경준 감독에게 운동장 안의 권한을 전적으로 맡겼다는 겁니다. 구단이 선수들에게 작은 시그널만 잘못 보내도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올해는 처음부터 '훈련, 전술, 기용은 감독의 독립적 권한'이라고 선을 명확히 그었어요.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조직 운영의 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내년 테크니컬 디렉터 제도의 의무화가 본격 적용되면 감독과 TD의 관계 설정은 K리그 전체의 핵심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 역할을 선도적으로 수행 중인 김해운 단장은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는 구조가 아니라, 분업과 역할 분리를 통한 고효율 운영 모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럽식 시스템을 보면, 감독의 권한을 줄이는 게 아니라 쏟을 에너지를 운동장에 집중하게 도와주는 역할이 디렉터입니다. 훈련, 전술, 기용에 TD가 직접 개입하면 안 되는 거죠. 그 경계를 명확히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누가 월권했느냐' 논란으로 번집니다.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는 감독 계약과 관련해서도 단호했다. "보통 2년 계약을 하잖아요. 그런데 1년 차 성적만 보고 감독을 자르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동계훈련을 한두 번 거치면서 자기 색깔을 입힐 시간이 필요한데, 그 전에 잘라버리면 어느 팀도 철학을 쌓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감독 소비가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감독 자원도 부족해지는 구조예요. 감독을 선임할 때 구단 철학과 얼마나 맞는지 꼼꼼히 검증하고, 한 번 계약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간을 지켜주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김해운 단장은 "디렉터는 대표보다 더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이사와 감독이 바뀌어도 구단의 철학과 중장기 플랜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자리가 TD라는 뜻이다. 성남에서 그는 전경준 감독에게 경기장 내부의 모든 권한을 일임하고, 자신은 후방에서 전체 전략과 방향성을 조율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 유소년부터 1군까지 하나의 축구, 성남만의 철학을 찾는 작업
김해운 단장이 단장 취임 이후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연계성'이다. 1군 전술과 유소년 팀 철학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은, 그가 생각하는 중장기 플랜의 핵심 축이다.
"올해는 1군 전력강화 시스템을 잡는 데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유소년입니다. 이미 강화팀, 운영팀과 유소년 시스템 설계를 시작했어요. 성남만의 슬로건과 철학을 정리해서, 누가 와도 방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시즌 초 유소년 지도자들과의 첫 미팅을 떠올렸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단 한 가지 원칙만 공유했다고 한다. "15세, 18세 팀에는 '포백 기반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프로팀이 포백을 쓰는데, 유스팀이 다른 전술을 쓰면 올라왔을 때 혼란이 생기잖아요.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프로와 같은 언어를 쓰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12세 팀은 8대8 경기니까, 전술보다 볼 터치 횟수와 기술에 집중하자고 했고요.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통합 작업이라고 봅니다."
김해운 단장은 디렉터의 역할을 "중장기 계획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당장의 성적보다 2년, 3년 뒤의 팀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전술을 한 해 만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포백이든 다른 시스템이든, 내려갈수록 같은 원칙과 언어로 훈련해야 프로에 올라왔을 때 적응이 빠릅니다. 지금은 그 방향을 맞추는 기초 공사를 하고 있는 셈이죠. 성남만의 철학과 슬로건을 유소년까지 하나의 축으로 묶어야, 구단이 사람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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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운 단장은 여러 차례 "대표가 축구를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구단의 체질을 바꾸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보는 장원재 대표이사는 "축구를 진짜 좋아하고, 축구 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사람"이다.
김해운 단장은 외국인 선수 한 명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 팀에서 대표와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선수가, 성남에서는 "대표와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다. "한 외국인 선수는 예전에 뛰던 팀에서는 대표가 축구를 잘 몰라서 답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성남에 와서는 대표와 이야기가 잘 통하고, 축구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어서 즐겁다고 했습니다. 현장을 이해하는 대표와 축구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는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장 대표는 팬과의 접점에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홈이든 원정이든, 스탠드로 직접 걸어 들어가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응원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대표님이 스스로 팬들 사이로 들어가시더라고요. 어웨이든 홈이든 직접 찾아가 이야기하고 같이 응원하니까 팬들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유튜브로 보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처음에는 '말려야 하나' 싶었는데, 대표님의 진심이 전해지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제 걱정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해운 단장은 그 장면을 보며 "결국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대표가 보여주기 식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서 팬들 사이로 들어가는 게 눈에 보여요. 팬들도 그걸 느끼니까 시너지가 나는 거고요. 우리가 철학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축구의 제일 중요한 건 진심인 것 같습니다. 방향은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거짓 없는 진심이 통하면 선수도, 팬도, 직원도 다 같이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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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구단의 자립 문제를 묻자, 김해운 단장은 스폰서와 티켓 수입 못지않게 "선수 이적"을 첫손에 꼽았다. 좋은 선수를 키워 국내외 시장에 내보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수익 모델이라는 인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와 구단 사이의 애착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선수들을 보면, 팀에 대한 애착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건 사실입니다. 에이전트가 시장을 넓혀주고 좋은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지만, 돈의 흐름만 따라가다 보면 이 팀에서 스스로를 키워서 더 큰 도전에 나간다는 감각이 약해져요. 구단 입장에서는 그런 선수가 이적해 줄 때 가장 큰 수익이 생기는데, 애착이 없다 보면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거죠."
경기장 인프라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현재 구장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축구 산업의 변화를 고려하면 전용구장의 필요성은 분명하다고 했다. "요즘 축구는 가족들이 주말에 즐기는 문화 공간이 됐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이나 축구 전용구장을 가진 팀과 비교해 보면, 관중 경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탄천과 종합운동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축구 산업을 생각하면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관중, 선수, 수익 구조까지 다 연결되는 문제니까요. 인프라가 갖춰지면 팬도 늘고, 산업화에도 시너지가 날 겁니다."
승격 로드맵에 대해서는 "한 방"이 아니라 계획을 강조했다. "예산을 2백억, 3백억씩 쓰면서 몇 년 집중 투자해 1부로 올라가는 팀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가능한 팀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예산을 줄이면서 체질 개선을 하고, 2년이든 3년이든 플랜을 잡아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매년 '올해는 무조건 승격'만 외치면 오히려 흔들리기 쉽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성남 내부에서는 예산 감소를 고려해 현실적인 목표치를 '7위 안착'으로 설정했다. 김해운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대 이상 성과로 보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었다. 지금 성남은 그 기대치에 조금 더 근접한 위치에서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중장기 플랜이 필요한데, 현실은 중장기를 기다려주지 않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표이사와 감독이 바뀌어도, 구단 철학과 방향을 붙잡고 있어야죠. 그게 없으면 매년 리셋 버튼만 누르는 꼴이 됩니다. 예산이 많든 적든 매년 '올인'을 외치기보다, 2년, 3년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팬들과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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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김해운 단장은 성남을 "삶"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다른 팀에서 들어온 제안들을 거절하고 성남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는 "결국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곳이 성남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팀들도 저를 원한 곳들이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연봉을 더 줄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제가 경험한 것들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생각해 보니, 결국 성남이었어요. 레전드라는 이름이 붙으면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팀이니까, 더 힘들어도 이 안에서 구조를 바꾸고 싶었어요."
그가 그리고 있는 성남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색깔을 잃어버린 팀에 다시 철학을 입히고, 전경준 감독에게 운동장 안의 전권을 맡기며, 유소년과 조직, 팬과 도시를 하나의 플랜으로 엮어 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축구를 아는 경영자 장원재 대표와의 호흡, 디렉터로서의 중장기 설계, 그리고 팬들과의 진심 어린 소통이 그의 키워드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다시 한 번 "진심"을 꺼냈다. "바로 올라가면 너무 좋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통하면서, 기다려주면서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남 팬들이 지금도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고, 그 진심에 우리가 응답해야 합니다. 한 방에 올라가는 팀도 있지만, 대부분의 팀은 그렇지 않거든요. 성남FC가 다시 강팀이 되는 길은, 저는 결국 팬들과 함께 중장기 플랜을 견디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 자체라고 믿습니다."
골문 앞 마지막 한 사람으로 서 있던 골키퍼는 이제, 클럽의 중장기 방향을 설계하는 단장이 됐다. 김해운이 세운 플랜은 눈에 잘 띄는 구호 대신, 구조와 시스템, 사람과 철학으로 채워져 있다. 성남이라는 도시와 클럽이 그 플랜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꾸준히 기다려 줄 수 있을지. 이제 성남의 다음 시즌들은 그 답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