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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흥행 ‘왕사남’에 氣받은 韓영화계,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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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6. 03. 13. 09:00

2월 극장가 매출, '왕사남' 흥행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2배↑
액수 늘어난 정부 주도 모태 펀드에 민간 자본 참여 증가 예상
개점 휴업 영화인들, '왕사남' 성공에 용기와 재기 의지 얻어
왕과 사는 남자 극장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1000만 고지 돌파가 생존 위기로 내몰렸던 한국 영화계에 회생의 기운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복합상영관 내부에 걸린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앞을 관객들이 지나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지난 1월만 해도 극장가는 '뭘 해도 안된다'는 분위기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달 초 만난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지난해 연 관객수가 1억명대를 간신히 유지한데 이어,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던 '아바타: 불과 재'의 흥행 결과마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드러나자 1월까지는 정말 암담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달에 못해도 1200만명 가량이 복합상영관 3사를 찾아야 업계가 그나마 돌아가는데, '아바타…'가 있어도 안되는 걸 보니 한숨만 나왔다"면서 "그런데 2월이 되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의 대히트로 지난달 3사 총 관객수가 1200만명을 넘어선 덕분"이라고 말했다.

가뭄 끝 단비처럼 찾아온 '왕사남'의 1000만 관객 동원이 빈사 직전의 한국 영화계에 '뜨거운 피'를 수혈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보급에 따른 관람 문화의 변화·관람료 인상 등으로 관객이 줄어들면서 생존 기로에 놓였던 제작과 투자·배급, 상영 등 각 분야가 '왕사남'의 대성공에 회생 의지를 찾기 시작한 분위기다.

우선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보면 수치 상에서 큰 폭의 개선이 이뤄졌다. 12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2월 극장 매출액은 1185억원으로, 531억원에 그쳤던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량 늘었다. 파죽지세로 전날 1200만 고지를 돌파한 '왕사남'이 이 기간 쓸어담은 액수는 737억원으로, 전체의 62% 가량을 차지한다. 영화 한 편의 흥행 폭발이 돈 안되는 지점의 폐쇄 등 '몸집 줄이기'에만 급급했던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영화 제작의 마중물인 정부 지원과 펀드 출자도 '왕사남'의 메가 히트에 힘입어 이전보다 활발해질 조짐이다.

최근 공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올해 중점 사업 계획에 따르면, 순 제작비 2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의 이른바 중예산 한국 영화에 대한 지원 예산이 지난해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늘었다. 홍보·마케팅비를 제외하면 100억원 미만으로 만들어진 '왕사남'과 비슷한 규모의 영화들이 더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돕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영화 계정 출자액이 7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배 가량 증액됐다. 따라서 정부의 영화계 지원 의지를 확인하고 '왕사남'이 일군 성과에 고무된 민간 자본의 펀드 참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 같은 관측과 관련해 '왕사남'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영화계로 자본이 예전만큼 다시 유입되는 변화가 지금 당장 일어날 것같지는 않다"면서도 "영화를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 년째 개점휴업 상태였던 여러 제작자들이 '다시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다는 점에서, '왕사남'의 1000만 고지 등극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왕사남'의 제작자인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와 과거 CJ ENM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아람 영화사람 대표는 "일면식이 없는 제작자가 만들었다 해도 박수를 쳐줬을 상황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그처럼 큰일을 해냈으니 기쁨이 몇 배"라며 "한국 영화의 재기 가능성을 알려줬다는 점만으로 '왕사남'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제작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드라마로 넘어왔지만, 떨어지는 돈이 심하게는 인건비 수준이다 보니 후속작 기획·개발은 꿈도 못 꾼다"며 "리스크를 감수하며 영화에 전념하고 싶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던 와중에, 새내기 제작자의 첫 도전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영화에 매진할 용기를 얻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겨울 옷을 정리하기에는 여전히 쌀쌀한 날씨라는 게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형편없는 수준으로 줄어든 제작 편수와 관객수 등이 코로나19 펜데믹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려면 '왕사남'의 흥행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므로, 오는 5월과 7월 개봉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군체'와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기발한 소재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연출자의 이름값을 압도한다는 소문이 영화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흥행을 예감케 한다.

하철승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에 관객들은 여전히 지갑을 연다는 걸 '왕사남'이 보여줬다"며 "영화인들이 '왕사남'의 흥행 성공을 잘 참고해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성 있는 이야기의 기획과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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