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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전쟁 중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시작점이 불분명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격화하고 있다. 이들 지역 이외에도 많은 분쟁과 갈등, 소규모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란을 두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방전은 끝날 줄 모른다. 드론이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한 시대에 드론 공격으로 건물이 파괴되고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진과 영상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곁을 파고든다. 초등학교에 폭탄이 떨어져 100명 넘는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 앞에서는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파키스탄 전쟁 영상과 사진도 마찬가지다. 근대 들어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은 5000 차례가 넘는다는 비공식 통계가 있을 정도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오히려 있을 수 있는 전쟁'이라고 받아들이기 십상일지도 모른다.
이전과 달리 지금의 전쟁은 그 참상이 세계 각국으로 곧바로 전파된다. 이민 등으로 자국을 떠나 타국에서 정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경선이 이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의 전쟁은 파급 반경과 속도가 과거와 다르다. 전쟁 포화 속에서도 휴대전화는 통한다. 포격으로 이웃이 무참히 죽어 나갈 때도 슬픔에 잠겨 있을 새 없이 또 다른 전쟁 뉴스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전쟁이 무덤덤해지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유가 급등이나 경기 침체는 덤으로 따라온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기 행정부를 이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시해 세계 각국 리더들은 지금도 자국 이익을 앞세워 약한 나라를 돈과 칼로 억누르려 하고 있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의 경우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인은 트럼프 행동에 맞서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를 내걸고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방식 자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정말 순식간에 빼앗기고 있다." 시위 참가자의 외침이 모두의 심금을 울릴 정도다. 중동전쟁이 종전 등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관세 전쟁'을 필두로 한 트럼프 행동은 베네수엘라 지도자를 강제 연금한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쿠바 영토까지 노리고 있지 않은가.
온통 전쟁 소식에 지쳐가는 요즘 주요국 지도자들이 아프리카 등 빈곤 지역 국가를 방문해 지원을 약속했다는 뉴스를 접해본 기억은 아련하다. 현지 주민과 악수하면서 격려하는 모습은 본 지 꽤 오래다. 유엔 등 국제기구가 빈곤국 지원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뉴스 역시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각국 자원봉사자들과 대규모 집짓기 봉사를 진행하다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등 세계를 향해 사랑과 평화, 인도주의를 주창한 전직 지도자들이 숱한데도 미국 등은 교훈을 외면한 채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평화와 공존, 공동번영, 상호이해라는 대의는 형해화한 듯하다. 자국 이익을 염두에 두고 앞만 보고 달리는 작금의 상황은 이제 전쟁과 파괴로 마구 치닫고 있다.
이성복 시인은 '그 여름의 끝' 시집에서 '느낌' 제목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강한 자가 주먹을 휘둘러 기존 질서가 파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한 자에게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공격하는 지금의 일상이 되풀이되면 과연 앞으로의 세상에는 뭐가 남을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은 과연 무얼까. 그 느낌이 파국으로 현실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흔적이 서로 미워하고 경계하며 평화를 외면하는 그런 흔적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각국 지도자들이 즉각 전쟁을 멈추고 항구적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도와주고 이끌어주며 세계 평화에 공동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건 힘센 나라부터 해야 함이 마땅하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