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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일 130년 연금 역사가 ‘국고투입’에 던지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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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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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한세대학교 교수
김상철 한세대학교 교수, 전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
올해 1월 시행된 국민연금 개혁법은 '18년 만의 개혁'이라는 자평과 달리, 부담의 상당 부분을 청년에게 미룬 반쪽짜리 개혁에 가깝다.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8년에 걸쳐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43%로 한 번에 올려 고정했다. 이로써 기금 소진 시점은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진다지만, 보험료 인상은 은퇴를 앞둔 50대에게는 길어야 5~10년의 부담인 반면, 20·30대에게는 30~40년의 짐이고, 높아진 소득대체율의 혜택은 모든 세대가 똑같이 누린다. 무엇보다 인구 충격을 자동으로 흡수할 자동조정장치가 여야 협상에서 빠졌다. 청년층이 이를 '개악'이라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차 개혁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던 2차 구조개혁 논의마저, 올해 5월 말 활동을 마치며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 강화'라는 두 갈래 안만 남긴 채 합의된 보고서를 내놓지 못했다. 개혁의 동력이 식어가는 이 자리에서, 부족한 재정을 일반 조세, 곧 국고로 메우자는 주장이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퍼지고 있다. 노령연금의 균등 부분(A값)을 세금으로 충당하자는 안, 사회연대세 신설, GDP의 1% 사전 투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드는 공통 근거가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연금 재정의 20~30%를 국가 세금으로 메운다'는 통계다. 우리도 세금으로 연금 적자를 메우면, 당장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연금을 깎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인용은 130년에 이르는 독일 연금사의 핵심 원칙을 놓치고 있다. 독일 국고지원의 뼈대는 '가입자가 보험료를 낸 적이 없는 영역, 곧 출산·양육, 군 복무, 실업처럼 사회 전체가 함께 떠안을 비기여(非寄與) 영역에 한해서만 국가가 세금으로 책임진다'는 분리 원칙이다. 독일은 1889년 비스마르크 입법에서 이를 세운 뒤, 1992년에는 국고지원 규모를 임금과 보험료율에 자동 연동해 정치적 자의(恣意)를 차단했고, 1998년에는 부가가치세를 1%포인트 올려 그 세수를 '비기여 급여 보전'에만 쓰도록 법에 명시했다. 독일이 막대한 세금을 연금에 지원하는 배경은 결코 제도의 구조적 적자를 땜질식으로 막으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국고 투입론은 이와 완전히 결이 다르다. A값에 의한 재분배는 함께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들 사이의 '내부 조정'이지, 보험 밖 비(非)기여자를 위한 보전이 아니다. 여기에 세금을 부으면 가입자가 나눠 부담할 비용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보험료율에 있다. 독일의 연금보험료율은 이미 18.6%로 한국(9%)의 두 배를 넘고, 2030년 무렵이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독일 국민은 그만큼 무거운 보험료로 스스로 책임을 지면서도 세금은 비기여 영역에만 엄격히 한정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일조차 버거워하면서 가입자 내부에서 해결할 몫까지 세금으로 넘기려 한다. 조세부담률이 낮으니 여력이 있다는 주장은, 정작 자기 책임의 크기를 보여 주는 보험료율의 격차를 비켜간다.

'어차피 같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는 항변은 솔깃하다. 그러나 출산·복무처럼 한정된 사건에 연동돼 규모가 저절로 통제되는 지출과, 인구 감소로 벌어진 구멍을 세금으로 끝없이 메우는 일은 그 본질이 다르다. 한국에는 적자를 통제할 재정준칙도, 충격을 흡수할 자동조정장치도 없다. 두 제동장치가 모두 없는데 '비기여'라는 명분의 한계선마저 풀리면, 국고 투입은 걷잡기 어렵게 불어난다. 더구나 종신연금은 오래 사는 고소득층에 더 후해,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면 보험료조차 내기 버거운 이들이 장수하는 중산층의 노후를 떠받치는 역진(逆進)마저 생긴다. 한국은 이미 노인 70%에게 매년 25조원이 넘는 세금을 들이는 기초연금을 따로 운영한다.

한국이 마주한 인구 충격은 독일보다 훨씬 가파르다.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고, 2050년 노년부양비는 유럽 주요국(약 50명)을 크게 웃도는 최대 80명 수준으로 증가한다. 이런 나라일수록 재정을 자동으로 안정시킬 장치가 더 절실한데, 정작 그것을 빼놓았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고 법에 못 박은 탓에, 기금이 마르면 그 적자를 세금으로 메울 근거까지 입법자 스스로 마련해 둔 셈이다.

가장 무거운 경고는 우리가 모범으로 제시하는 독일에서 나오고 있다. 메르츠 정부는 지난해 12월 '연금패키지 2025'로 소득대체율 48% 하한선을 2031년까지 강제로 고정했고, 그 결과 2004년 도입된 지속가능성계수의 자동조정 기능이 사실상 멈췄다. 그 비용을 세금으로 채우다 보니 2026년에는 연방 조세수입의 약 3분의 1이 연금 보조금으로 흘러간다. 올해 4월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법정 연금은 앞으로 노후의 기초 보장에 그칠 뿐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본받자며 인용해 온 그 독일 모델의 한계를, 독일 정부 수반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가 독일에서 배울 것은 20~30%라는 비율의 겉모습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질 돈과 가입자가 낼 돈을 가르는 130년의 원칙이다. 국고 투입은 출산·양육·군 복무·돌봄처럼 분명한 비기여 영역에 한정하고, 그마저 미래의 기여 증가분을 감안한 '순비용' 기준으로 필요한 만큼만 지원하도록 법에 정해야 한다.

인구 충격에 대한 본격적 대응은 세금이 아니라 한국형 자동조정장치 도입, 정년의 점진적 연장, 기초연금의 표적화, 다층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함께 묶는 데 있다. 독일이 자동조정장치를 중단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지금, 한국이 같은 길을 자청하는 것은 진통제로 중병을 버티려는 것과 다름없다. 자기 책임을 지는 보험 원리의 회복이야말로 국가 재정을 구하고 청년 세대를 지키는 최선의 답이다.

김상철 한세대학교 교수, 전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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