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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용산 잔혹사와 택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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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8. 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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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훈 논설위원

용산(龍山)은 원래 풍수지리상 지기(地氣)가 강한 땅이라고 한다. 지명(地名)부터가 그렇다. 북한산 줄기가 남산 너머로 구불구불 뻗어 한강변에서 머리를 쳐든 용의 형상이라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이름의 기상과 달리 오랜 세월 외국군 주둔지로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난의 땅이기도 하다. 13세기 고려말 우리 땅을 침범한 원나라가 병참기지를 세운 게 용산 수난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토군이, 임오군란 땐 청나라군이, 일제강점기엔 일본군 사령부와 조선총독부가, 6·25전쟁 이후엔 미군이 차례로 주둔했다. 앞쪽엔 물자수송에 편리한 한강을, 뒤쪽엔 천혜의 성벽 남산을 끼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는 군사적 요충지여서 그렇다고 한다.


반면 풍수학자들의 해석은 좀 다르다. 용의 기운이 너무 센 탓에 군대 말고는 배겨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풍수적으로 산은 사람을 관장하고, 물은 재물을 관장하니 용산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하지만 용의 기운이 서린 용산은 조용히 복을 주는 명당이 아니다. 자신을 차지한 사람과 조직에 큰 힘을 주지만, 거꾸로 주인이 그 힘을 다스리지 못하면 오히려 큰 해를 입힌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강대교에서 한강로를 따라 서울역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사옥을 두고 있었다. 데이콤, 국제상사, 해태제과, 벽산, 대우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군사정권이나 외환위기 등 외풍이 심할 때 도산하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서울역 맞은편은 해가 지는 방향이라 사업 운세에 안 좋다는 뜻에서 '서향괴담'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물론 같은 용산에 둥지를 틀었지만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있다. K뷰티의 주역 아모레퍼시픽이 대표적이다. 개성상인 출신 선대 회장인 고 서성환 회장이 용산에 본사 터를 잡은 게 1956년이었다. 아들인 서경배 회장은 지난 2017년 이곳에 '한국판 구글 사옥'이라고 불리는 3차 사옥을 지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 사옥은 건물 가운데 정사각형 구멍을 내는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 구멍을 두고 용이 드나들 수 있는 '드래곤 게이트'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또 하나 비밀이 있다. 대로변이 아니라 건물 반대편 용산공원 방향으로 낸 주출입구가 바로 그것이다. 회사 측은 "용산공원 쪽 전경이 훨씬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강로 쪽에서 몰려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선대회장 시절부터 문을 바꿔 달도록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용산 잔혹사의 정점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소위 '용와대' 구상이었다. 이를 두고 무속과 풍수지리를 믿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당시부터 적지 않았다. 풍수가들 사이에선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한 게 거친 바위로 가득한 북악산 바로 아래 위치한 현 청와대 터가 흉지(凶地)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미국 백악관, 영국 다우닝가 10번지처럼 시민들과 접점을 찾기로 했다"며 풍수지리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무실 이전을 검토했던 광화문과 달리 용산 국방부 청사는 이런 조건에 부합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용산공원 일부 터에 청년·신혼부부용 임대주택 2만 가구를 짓겠다는 구상을 내놓으면서 용산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용산공원이 들어설 주한미군 반환 부지는 총 300만㎡(91만평)로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341만㎡·103만평)와 맞먹는다. 이 가운데 용산 어린이정원, 옛 방위사업청 부지, 장교 숙소, 병원 부지, 미군자녀 학교 등 녹지 기능이 훼손된 약 9만평(10%선)을 택지로 개발하자는 게 정부 주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용산공원은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인 만큼 한 평도 건드릴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제 2007년 오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원 외 목적으로 용도를 바꾸거나 처분할 수 없다'는 용산공원특별법을 제정한 게 다름 아닌 진보정권인 노무현 정부였다. 서울시민 3명 중 2명은 용산공원의 택지개발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여론도 부정적이다. 오염토지 정화기간 등을 고려하면 입주까지 10년은 족히 걸려, 한시가 급한 주택난 해결과 집값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솔직히 의문이다. 풍수지리상 용산공원은 '용의 심장' 격에 해당돼 손을 대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곳에 고층 아파트를 수만 가구씩 지으면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와 바람길을 가로막고, 용산공원의 한강·남산 조망권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논란이 많은 용산공원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체부지로 제안한 강남구 일원동 탄천물재생센터를 택지로 개발하는 게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환경훼손 우려가 적은 데다, 최대 1만3000가구 청년 임대주택에 첨단산업 연구개발(R&D) 단지까지 함께 지으면 경제성도 용산공원보다 낫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탄천물재생센터를 옮겨갈 이전 부지 선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는데, 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팔을 걷어붙이면 못 넘을 산은 아니라고 본다. 정부 시책인 광주전남 반도체 팹(제조공장)이 들어설 광주 군 공항은 이전 후보지로 전남 무안군 망운면 일대를 속전속결로 선정하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소속 오 시장 제안이라고 해서 "허황된 주장"이라고 무조건 깎아 내려선 안 된다.

설진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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