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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초거대 AI’ 계획경제, 시장보다 더 효율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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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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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고문
김이석 논설고문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최근 경제학과 기술 사상 분야에서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던져지고 있다. "사회 전체에 분산된 방대한 지식을 가장 잘 수집하고 처리하는 주체가 AI라면, 정부가 초거대 AI를 활용해 경제를 통제할 때 개입의 효율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이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디지털 사회주의' 혹은 'AI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는 이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중앙계획당국의 정보수집과 처리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현대의 슈퍼컴퓨팅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전체 경제의 투입과 출력을 실시간 계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들은 빅데이터와 AI로 소비와 생산을 실시간 예측함으로써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하는 '지능화된 계획의 손'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1920~1930년대 루트비히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펼쳤던 '사회주의 경제계산논쟁'의 핵심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당시 미제스는 자본재의 사적 소유와 가격 기구가 없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자원의 희소성을 알려주는 '가격'이 형성될 수 없으므로, 생산수단을 어떻게 조합해야 합리적인지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오스카르 랑게 등이 행정 가격으로 시장을 흉내 내자고 제안했으나, 미제스는 이를 "아이들의 전쟁놀이를 어른들의 진짜 전쟁과 혼동하는 격"이라 일갈했다.

그렇다면 미제스의 지적처럼 합리적 경제계산이 불가능함에도, 과거 소련의 계획경제가 어떻게 74년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소련 계획당국이 자본주의 국가들의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차용해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른나라 시장 가격을 어색하게 흉내 낸 셈이다. 둘째는 '톨카치'라 불린 불법 지하경제 기업가들의 존재였다. 이들은 원자재가 모자라 공장이 멈출 위기에 처하면, 비공식 거래와 뇌물로 원자재를 구해다주며 계획경제의 빈틈을 메워주었다. 결국 소련 체제는 자본주의 가격을 모방하고 지하경제를 묵인했기에 가까스로 연명했을 뿐, 체제 자체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AI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중앙집중적 AI 계획 체제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이에크가 강조한 '지식의 본질' 때문이다. 첫째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의 존재다. 인간이 경제활동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정보의 상당수는 글로 적거나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장의 감각, 즉흥적인 선호, 숙련된 노하우와 주관적 직관이다. 기업가정신을 '동물적 감각(animal spirit)'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계량화된 데이터만 학습할 수 있는 AI가 개인의 머릿속에 잠재된 이러한 암묵지까지 수집할 수 없다.

둘째는 정보의 시간차와 '유효성' 문제다. 경제 현상은 멈춰 있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시시각각 움직이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현장의 정보가 중앙당국의 슈퍼컴퓨터로 전송되고, 이를 AI가 분석해 중앙의 명령으로 하달되는 동안 현장의 상황은 이미 달라져 있다. 중앙 AI에 도달한 정보는 이미 유효성이 지난 과거 '스냅샷 데이터(snapshot data)'에 불과하게 된다.

이제 다음 두 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비교해 보자. 첫째, 정부가 슈퍼 AI를 독점하고 개인은 아무런 AI도 갖지 못한 채 슈퍼 AI를 가진 중앙의 지시를 따르는 상황(시나리오 1). 그리고 둘째, 개인들이 저마다의 AI를 손에 쥐고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하며 정부가 전체 계획을 세우지 않는 상황(시나리오 2). 이 두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이 경제적 효율성이 더 좋을까.

최근 본지에 게재된 칼럼 '거대 AI 하나보다, 작은 여럿이 나은 이유'에서 AI 전문가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가 소개한 AI 멀티에이전트 실험 결과는 '시나리오2'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2024년 왕준린 등 5명의 연구진은 값싼 소형 AI 에이전트 6개를 3개 층으로 쌓아 서로 협력하게 했다. 이 시스템은 당대 최강이던 단일 거대 모델 GPT-4(옴니)를 앞질렀으며, 비용 효율성도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2025년 앤스로픽 실험에서도 단일 모델 혼자 조사를 수행할 때보다, 여러 하위 에이전트가 역할을 나누어 조사했을 때 성과가 90.2%나 향상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AI의 작업 단계가 길어질수록 극명해진다. 매 단계의 정확도가 95%인 AI라도 스무 단계를 혼자 수행하면 전체 성공 확률이 36% 이하로 급락한다. 그러나 분산된 멀티 에이전트가 각 단계마다 서로를 상호 검증해 주면 정확도의 무너짐을 막을 수 있다. 단일 거대 AI는 독단적 일탈이나 환각(할루시네이션) 위험에 취약하지만, 분산된 에이전트들은 상호 검증을 통해 집단지성을 창발해내며 성과와 안전성 면에서 더 뛰어난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라 할지라도 분산된 지식과 암묵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길은 중앙당국의 거대 AI에 권력을 집중하는 'AI 사회주의'가 아니라, 개개인이 저마다의 AI 에이전트를 자율적인 무기로 삼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고 경쟁하는 '시장질서'라는 이야기다. 'AI 사회주의'가 정치적 권력의 독점을 가져올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더욱 분명해지는 게 아닐까.

김이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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