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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그린란드는 매각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 발상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트럼프는 덴마크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2025년 들어서는 트럼프가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군사적·경제적 압박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갈등이 다시 격화했다. 프레데릭센은 "그린란드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는 그린란드 주민에게 있다"고 맞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진영의 동맹국 사이에서 보기 드문 충돌이었다.
그런데 지난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의 협정 서명식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트럼프는 "굉장한 관계, 안전한 관계를 기대한다"고 했고, 프레데릭센은 "미국·그린란드·덴마크에 좋은 협정"이라고 평가했다. 젠스프레데릭 닐센 그린란드 총리도 "그린란드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면서 공동 안보를 강화하는 협정"이라고 환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격하게 대립하던 세 당사자가 서로의 핵심 이익을 담은 합의에 만족을 표시한 것이다.
트럼프의 거친 화법과 패권적 태도는 자주 비판받아 왔다. 그의 거친 화법은 외교의 '저급함'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 성적표는 협상 과정에서의 점잖은 태도가 아니라 결국 최종적으로 무엇을 주고 얻었느냐로 평가된다. 인정하기에 불편할 수도 있지만 냉혹한 국제질서의 현실이다.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거친 화법에 극단적 요구를 담았다. 그리고 이를 지렛대 삼아 타협점을 찾아내는 냉혹한 협상 기술을 보여줬다. 미국은 '영토 매입'이라는 패를 보인 뒤 군사적 접근과 방위 영역을 확대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진출과 민감한 투자에 대한 차단 장치를 확보했다.
영토 매입은 애당초 협상 기술에 기반한 '과잉 주장'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덴마크와 그린란드는 주권과 자기 결정권이라는 핵심 이익과 명분을 지켰다. 트럼프의 초기 요구와 최종 합의 사이엔 간극이 있다. 바로 그 간극을 협상으로 메우며(애당초 계획이었겠지만) 각자의 핵심 이익을 합의문에 담아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앞두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의 북핵 해법은 그린란드 합의 과정과 대조적이다. 그린란드 사태는 미국의 전략적 우위와 덴마크·그린란드의 주권이 충돌한 사안이다. 반면 북핵은 이미 상당한 핵·미사일 능력이 축적된 상태에서 북한의 전략적 자산 자체가 협상 대상이라는 점에서 구조가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협상의 본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우선 중단, 중기적 축소, 장기적 핵 없는 한반도 지향이라는 3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외신 인터뷰에서는 핵·미사일 개발 동결에 상응해 미국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완전한 비핵화를 당장 관철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문제는 단계론 자체가 아니라 협상 카드의 순서다. 북한이 포기할 것은, 이미 보유한 핵 능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추가 고도화를 멈추는 것이다. 반면 미국이 제공하게 될 카드는 현재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다. 두 카드가 정말 대등한 가치인가. 더 중요한 것은 핵 동결이 감축과 폐기로 실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결이 장기화하면 단계적 비핵화가 아니라 사실상 핵 보유 상태를 관리하는 체제로 굳어질 위험성이 크다.
물론 반론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먼저 요구하면 북한이 협상 자체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우선 동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그러나 동결을 협상 출발점으로 삼는 것과, 그 대가로 내놓을 보상의 윤곽을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밝히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양보의 유무가 아니라 상호성이다. 북한의 검증 가능한 행동을 확인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단계적으로 제공해야 협상 지렛대를 유지할 수 있다. 합의 불이행 때 풀린 제재를 되돌릴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그린란드 합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트럼프의 거친 말투와 태도가 아니다. 먼저 자신의 핵심 이익을 분명히 하고 상대의 레드라인을 확인한 뒤, 실제 협상에서 무엇을 언제 양보할지를 결정하는 순서다. 북핵에서도 단계적 접근 자체를 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행동보다 보상 카드를 먼저 앞세워서 얻는 예상 이익은 뭔가. 우리의 숱한 제안과 저자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전술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최근 미국은 이에 호응하는 듯한 북미 정상회담도 거론한다.
그린란드 합의가 던져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트럼프를 닮을 것인가, 이재명 방식을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핵심 이익을 극대화하는 카드를 먼저 던져 주도권을 쥐고, 양보는 철저히 상대의 행동에 연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구체적 행동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제재 완화라는 보상 카드를 꺼내는 것은 협상 기본인 상호성 원칙에 위배된다. 외교의 실력은 선의가 아니라, 냉정한 상호주의와 정교한 양보의 순서 관리에서 나온다. 그리고 성패는 과정보다 최종적으로 무엇을 얻었느냐로 판가름 난다.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