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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한국어라는 사다리의 다음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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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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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서 열린 제5회 대한민국대사배 베트남 전국 한국어 말하기대회 결선에서 이미연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 지명자(가운데)와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정리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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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26일(현지시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서 제5회 대한민국대사배 베트남 전국 한국어 말하기대회 결선이 열렸다. 올해 대회에 참가한 기관은 대학 28곳, 중·고등학교 49곳, 세종학당 17곳 등 94곳이다. 첫 대회가 열린 2022년 50곳에서 해마다 늘어 거의 두 배가 됐다. 이날 결선 무대에는 베트남 전역에서 예선과 지역 본선을 거친 18명이 올랐다. 주제는 '나의 소망 목록(버킷리스트) 3가지'와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 두 가지였다.

결선 진출자들의 발표에서 가장 자주 들은 것은 부모였다. 버킷리스트를 고른 참가자 대다수의 목록에 부모가 있었다. 호치민시의 한 세종학당 수강생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좋아하던 어머니를 남이섬에 모시고 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바란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던 어머니가 한국어를 배우는 아들에게 딱 한 번 한 말이었다. 어떤 참가자는 두 달 전 큰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어떤 참가자는 한 달 전 심장 수술을 받은 공장 노동자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AI를 고른 참가자들도 결국 사람으로 돌아왔다. AI가 써 준 완벽한 위로문을 지우고 "네 이야기 들을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어"라고 직접 보냈다는 대학생의 이야기가 그랬다.

무대에 오른 18명 뒤에는 수만 명이 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베트남 초·중등학교는 2023~2024학년도 95곳에서 올해 164곳으로, 학생은 2만640명에서 3만4315명으로 늘었다. 한국어는 베트남 정규 교육과정의 제1외국어가 됐다. 한국어학과를 둔 대학은 54곳, 학생은 2만6260명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베트남 유학생은 2022년 3만7940명에서 지난해 7만5144명으로 3년 만에 두 배가 됐고, 중국을 넘어 국적별 1위에 올랐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지원자도 같은 기간 3만8739명에서 8만3774명으로 두 배를 넘었다.

배우는 사람이 이렇게 늘면 궁금해지는 건 그 다음이다. 한국어를 배운 이들은 어디에 서게 될까. 이 대회의 역대 수상자들이 한 가지 답을 준다. 2022년 첫 대회 수상자는 지금 삼성전자에서 일한다. 2023년 중고교 부문 수상자는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2024년 수상자는 우리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수상자 두 명은 이화여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한 칸씩 딛고 올라선 사다리였다. 올해 한 참가자는 버킷리스트 첫 줄에 바로 그 이화여대 어학연수 장학금을 적었다.

참가자들의 발표에는 사다리를 오른 뒤의 계획도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무료 한국어 교실을 열겠다는 참가자, 보육원에서 혼자 한글을 익히던 아이를 보고 한국어 선생님을 꿈꾸게 됐다는 고등학생, 고향에 집을 지어 1층을 한국어 학원으로 만들겠다는 세종학당 수강생이 있었다.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싶다는 한 대학생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 베트남은 어떻게 이렇게 가까워졌을까? 앞으로는 어떤 분야에서 더 많이 협력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숫자를 다시 보면 과제가 보인다. 첫째, 가르칠 사람이다. 한국어 채택 학교가 2년 만에 1.7배로 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학교들은 한국인 교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교과서 밖의 살아 있는 한국어와 한국 사회를 전해 줄 원어민 교원은 한국 정부가 직접 보내야 채워진다. 동시에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는 청년들이 이미 무대 위에 있다. 한국인 교원 파견을 늘리고, 이 청년들을 현지 교사로 길러내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한국인이 가르치고 베트남인이 이어받는 구조가 갖춰질 때 제1외국어라는 이름에 걸맞은 교실이 된다.

그 다음은 사다리의 다음 칸이다. 지난해 한국의 베트남 유학생 7만5144명 가운데 어학연수생이 3만3629명으로, 학사 과정생 3만2629명보다 많다. 석사 과정은 7342명, 박사 과정은 894명이다. 절반 가까이가 아직 입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어학연수는 출발점일 뿐 그 자체로 학위도, 일자리도 되지 않는다. 연수를 마친 뒤 대학에 진학할 장학금과 비자가 이어지고, 학위를 받은 뒤 한국 기업이나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 가는 길이 열려야 사다리가 된다. 그 길이 끊기면 학업 대신 일터로 빠지거나 체류 기한을 넘기는 이들이 생기고, 그 부담은 결국 두 나라 모두에 돌아온다.당장 몇 명을 데려오느냐보다, 데려온 이들이 어디까지 올라가 어디에 서느냐가 이 숫자의 의미를 가를 것이다.

한-베 관계는 흔히 교역액과 투자액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그 숫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두 나라 말을 모두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 무대에 선 18명은 어머니를 남이섬에 모시고 가고 싶어서, 다음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이 할 일은 그 사다리를 더 높이 쌓는 것만이 아니라, 올라온 사람이 다음 칸을 딛고 다시 내려가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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