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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재계 야전사령관… LX의 성장뒤 구본준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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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승인 : 2026. 11. 0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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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 강한 완벽주의 '전사형 리더'
반도체 매각 등 위기마다 구원투수役
LG필립스LCD 3년 만에 세계 1위로
LG그룹와 분리후 LX 홀로서기 성공
친필 편지 담은 'CEO 피자' 화제몰이
직설화법 뒤 따뜻함으로 스킨십 경영
8대2 가르마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부터 빈틈없이 갖춰 입은 옷까지,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외모와 옷차림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단정한 외양 너머에 있다. 온화한 '인화(人和)'를 경영의 미덕으로 삼아온 구씨 가문에서 그는 유독 강한 승부욕과 돌파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누군가는 '전사형 리더'라 불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보스형 경영자', 때로는 '싸움닭'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그러나 그 강한 기질의 이면에는 자신이 맡은 일만큼은 끝까지 책임지려는 고집과 쉽게 물러서지 않는 집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구본준이라는 이름에 따라붙은 별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8년 겨울의 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무책임한 보고서를 발표해 LG에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힌 ADL(아서 디 리틀)을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1998년 12월 27일, LG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이던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꺼낸 말이다. 미국 컨설팅사 ADL의 평가를 근거로 '반도체 빅딜'을 밀어붙이던 정부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도체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것, 그게 핵심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추천한 ADL이 현대전자가 통합 법인의 경영 주체로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자, 그는 즉각 자기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금융감독원에서 세계적 평가기관의 결론을 부정하느냐며 몰아붙였고, 채권단은 신규 대출을 끊겠다고 했지만 그의 의지는 꺾지 못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 카드까지 꺼내 들며 판을 뒤집으려 한 것이다. 결국 해를 넘긴 1999년 1월 6일 형 구본무 회장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고 LG반도체 지분 100%를 현대전자에 넘기기로 하면서 싸움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반도체를 내준 그해 가을, 그는 LG필립스LCD 대표 자리에 앉았다. 훗날 그를 대표하는 이른바 '독한 경영'은 이 무렵 시작됐다. 3년 만에 회사를 LCD 세계 1위로 끌어올렸을 때 그랬고, 적자에 빠진 LG전자에 '구원투수'로 들어가 회의 첫 인사말을 "반드시 1등 합시다"로 바꿀 때도 그랬다. 2021년, 그는 LG에서 독립해 LX를 세웠고 이제 반도체 설계회사 LX세미콘을 키워가고 있다. 장남 구형모 사장에게 지분을 넘기며 조직의 큰 밑그림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 반도체·LCD·전자… 승부처마다 선 '야전 사령관'

구본준 회장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4남 2녀 가운데 셋째 아들이다. 부산 경남중과 서울 경복고를 나왔고 1978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경영·경제학 전공이 대부분인 재계 오너 가운데 드문 이공계로 꼽힌다.

대학을 마친 뒤 1978년부터 2년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고,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친 뒤 1982년부터 3년여 미국 AT&T에서 일했다. LG에는 1985년 12월 금성반도체 부장으로 들어왔다.

첫 대표이사 자리는 LG반도체였다. 1997년 3월 전무로 옮긴 뒤 대표이사에 올랐다. 외환위기 뒤 김대중 정부가 대기업 '빅딜'을 밀어붙이면서 LG반도체는 현대전자에 사업을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승복할 수 없다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버텼다. 그룹은 끝내 정부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지분을 넘겼다. 현대전자는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꿨고, 2012년 SK그룹에 인수돼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됐다.

뒷수습도 그의 몫이었다. 직원 상당수가 사표를 냈고 생산라인은 열흘 가까이 멈춰 서자 직원들을 달래고 또 달랬다. 협상은 2000년 말까지 고용을 보장하고, 그 전에 정리되는 직원에겐 10개월치 위로금을 주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구 회장은 이후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와의 합작사인 LG필립스LCD 대표에 취임했다. 회사는 2002년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10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 세계 1위를 지키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 10월에는 당시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한 LG전자로 투입됐다. 미국 CES 간담회에서 구 회장은 "회사를 들여다 보면, 약간 무른 분위기가 있다"며 "앞으로 이 조직에 독하고 강하면서도 실행력 높은 DNA를 심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독한 LG'의 시작이다. 구 회장은 노조간부 체육대회에서는 "강한 자신감과 싸움닭 같은 투지만 있다면 어떤 승부도 이길 수 있다"며 "더욱더 독하게 실행해 진정한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다 같이 뛰자"고도 했다.

LG전자 영업이익은 2010년 1764억원에서 2014년 1조8286억원으로 늘었다. 2013년 세계 첫 OLED TV를 내놨고, 자동차부품 사업을 하는 VC사업본부를 세웠다. 2015년 11월에는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옮겨 그룹의 새 먹거리를 맡았다. 2018년 4월 그룹 사상 최대 M&A인 오스트리아 차량 조명업체 ZKW 인수가 성사됐다. 그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거래다. 2018년 구본무 회장이 별세했고 조카 구광모 상무가 회장으로 선임됐다. 구본준 회장은 그해 말 임원 인사에서 물러나 고문이 됐다. 장자가 그룹을 잇고 형제는 물러나는 가문의 원칙을 따랐다.

◇ 직설 화법 뒤 '피자 경영', 야구선수 꿈꾸던 CEO

그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피자 CEO'로 불리게 된 사연이다. 시작은 2011년 LG전자 평택사업장이었다. 늦은 밤까지 연구개발에 매달리던 연구원 300여 명에게 피자 80판을 깜짝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 번의 작은 격려는 이내 특별한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CEO 피자'는 2014년 11월까지 임직원 약 5만5000명에게 전달됐고, 해외 법인과 지사 약 80곳에도 배달됐다. 때로는 친필 서명이 담긴 편지가 피자와 함께 도착했다. 음식보다 먼저 전해진 것은 현장을 향한 관심과 고생을 알아주는 마음이다.

그의 온기는 LX그룹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1년 8월, 폭염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현장 직원과 협력사 직원 800여 명에게 예고 없이 3만원 상당의 모바일 쿠폰을 보냈다. 에어컨 설치 물류는 물론 욕실과 주방 시공을 맡은 협력사 직원들까지 챙겼다. 회사의 이름과 울타리가 달라져도 현장을 향한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완벽주의 뒤에는 묵묵히 땀 흘리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구본준의 또 다른 리더십이다.
최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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