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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2015년 덕종어보 환수 당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1438∼1457)을 기려 1471년 제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태조사를 벌여 덕종어보가 진품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덕종어보 진품은 분실된 상태이며, 이는 이미 1924년 언론에 보도됐다. 모조품은 1924년 분실 직후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제작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금 남아 있는 덕종어보는 일제강점기에 분실됐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며 “덕종어보를 받아올 당시에는 재제작품인지 몰랐다. 이후 1924년자 기사를 보고 파악했다. 또한 다른 어보와 비교 분석 결과 15세기 유물이 아니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덕종어보는 성종이 아버지에게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바친 유물이다. 그러나 1924년 종묘에 사상 초유의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종어보와 함께 모두 5점이 사라진 것.
덕종어보가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해에도 제기됐다. 당시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이사는 어보에 있는 글씨가 다른 어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어보에 새겨진 공경할 경(敬) 자에서 입 구(口) 자 부분을 날 일(日)로 처리한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각에서 사용하는 서체에 장식이 많기는 하지만, 입 구 자를 절구 구(臼) 자가 아닌 날 일 자로 쓰는 경우는 없다”며 “어보에 있는 따뜻할 온(溫) 자와 보배 보(寶) 자도 서체가 이상하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덕종어보가 진품이라 밝혔으나 1년 만에 입장을 뒤집었다.
학계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환수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고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알리지 않는 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문화재청은 문화재 행정·연구 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