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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07년 7월 WBA 페더급 챔피언 지인진(1973년생·대원체육관)이 타이틀을 반납한 이후 11년째 ‘무관의 나라’에 머물러 있다. 1965년 12월 서강일(1939년생·서울)이 한국 복싱 사상 첫 세계타이틀에 도전 한 이후 한국 복싱은 1989년 6월 당시 유명우, 김용강, 문성길, 이열우, 백인철, 박영균 등 무려 6명의 세계챔피언을 보유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복싱 강국으로 군림했다. 1991년 6에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당시 WBA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치타 김용강(1965년생·화순)이 알바레스를 꺾고 정상에 올라서며 한국복싱은 유명우, 문성길, 최희용, 박영균 등 5명의 챔피언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2년에는 일본 원정 세계타이틀 6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문성길, 박영균 등 단 2명의 챔피언만 남았다. 한국복싱은 비틀거렸다. 1993년 11월과 12월에는 문성길과 변정일(1966년·태안) 마져 차례로 벨트를 풀면서 무관의 국가로 전락했다. 이후 한국복싱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챔피언 숫자의 격감은 흥행시장의 축소와 직결됐다. 흥행시장의 축소는 유망주들의 탄생 기회와 신인 지망생들의 입문을 원천봉쇄 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복싱 침체기, 즉 복싱 빙하기(氷河期)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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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은 1991년 3월 WBA 페더급 챔피언 에스파라고사(36전 31승 4무 1패·27KO)를 꺾고 정상에 오른 불굴의 파이터다. 2차 방어전에서는 22전 22승 21KO승을 기록한 ‘인간지뢰’ 엘로이 로하스를, 6차방어전에선 23연승(21KO승)을 기록한 ‘갈색폭격기’ 에버 벨레뇨를, 8차방어전에서는 16전 전승 11KO승을 기록한 ‘시한폭탄’ 전태식(1964년생·송탄체육관) 등을 제압한 ‘극강의 챔피언’이었다.
신 관장은 박영균과 함께 침체된 한국복싱 부활의 기폭제(起爆劑)가 될 ‘불도저 상(賞)’을 만든다. 한국복싱 발전을 위해 전도유망(前途有望)한 복서들에게 표창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의 발로로 박영균의 닉네임을 따서 만든 상이다. 그는 챔피언이 탄생하는 날까지 불도저상 시상을 지속하기로 못을 박았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듯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아닐까.
두 사람은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을 차곡차곡 모은 지 2년 만에 2000만원이란 종자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올 3월부터 드디어 첫 불도저상 시상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경기를 참관하고 해당 경기가 끝난 후 그날의 MVP를 선정해 상패와 격려금을 전달했다. 관련된 모든 비용은 체육관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에서 충당했다. 불경기로 체육관의 상황이 좋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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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복싱클럽 관장·서울시복싱협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