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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는 올해 들어 노환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두 차례나 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최근에는 약 35년간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KBS 1TV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컸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는 한국대중문화사와 함께했다. 특히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애착이 컸다. 생전 인터뷰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 갈등, 고부 갈등, 직업 간 갈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 성별과 세대 간 갈등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해소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현역 최고령 MC’로 그동안 공개 녹화장을 통해 1000만 명 이상의 서민들을 만나 소통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3월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후에도 스튜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등 의지를 보였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MC를 맡기 전에는 가수이자 희극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데뷔해 드라마 ‘싱글네 벙글네’ ‘나를 돌아봐’ ‘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 ‘부캐전성시대’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고인이 된 코미디언 배삼룡, 구봉서 등과 한 무대에 섰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다. 지금까지 12장의 앨범을 발표했을 정도로 노래 실력도 출중했다. 2011년에는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까지 열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수식하는 수많은 말 중에 ‘오빠’가 가장 좋다고 했다.
송해는 실향민으로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안고 살았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겪었다.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이런 그의 일대기는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했다. 올해 설 연휴에는 후배들의 헌정 트로트 뮤지컬 공연 ‘여러분 고맙습니다’가 KBS를 통해 방송됐다.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해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방송가와 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을 함께 해온 신재동 악단장은 “가슴 한켠이 뻥 뚫린 것처럼 허망하다”고 애도를 표했다. 가수 태진아는 “송해 선생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상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아버님이었다”고 애도했다. 코미디언 이용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송해 선생님의 카랑카랑하신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고 추모글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