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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한양의 세거지(世居地)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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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승인 : 2024. 01. 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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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세거지
한양의 세거지(世居地) 표지/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이 조선시대 한양의 거주지 실태 양상을 연구한 '한양의 세거지(世居地)-서울기획연구 11'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를 책임으로 이종묵 서울대 교수, 오세현 경상대 교수, 김하라 연세대 교수, 김세호 경상대 교수가 참여했다.

조선 후기 한양의 거주 양상을 살펴보면 신분별·직업별로 모여 사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후기 한양 인구는 약 19만명으로 한양을 동·서·남·북·중 5개 지역으로 나눴다.

동촌에는 반인(伴人)과 무관이, 서촌은 하급관리, 남촌은 남인과 소론·소북, 북촌은 양반과 종친, 중촌은 중인과 시전상인이 주로 거주했다.

또 양반들의 경우 서울 곳곳에 세대를 거듭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거주 지역명이 본관의 별칭처럼 불리기도 했다. 한 곳에 오래 모여 거주하다 보니 집안의 고유한 문화가 지역성으로 자리잡은 경우가 있었다.

한양의 동촌에 터전을 이룬 연안이씨(延安李氏)는 관동이씨(館洞李氏)로 불렸다. 초기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석형이 동촌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에 연안이씨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 후손 이정귀 (李廷龜, 1564∼1635)가 관동에 거주하면서, '관동파'라는 조선 중기 문인들의 모임을 주도했다.

정동이씨(貞洞李氏)는 정동에서 거주하는 여주이씨(驪州李氏)를 일컫는 말이다. 고려후기 개경을 세거지로 삼았던 여주이씨 가문은 한양과 주변을 옮겨 다니다가 17세기 이상의(1560~1624)부터 정릉에 거주했다.

그의 증손자인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전집, 단헌기에서 '우리 이씨는 증조부 이상공(貳相公, 이상의) 때 정릉동에 집을 정한 이래 사람들이 '정동이씨'라고 일컬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왕산 근처 장동에 자리 잡아 장동김씨(壯洞金氏)라 불리는 청풍계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다. 장동김씨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과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며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의 후손들로 장동일대에서 고유한 문화를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한 한양의 세거지는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울책방 매장과 누리집, 서울역사박물관 내 뮤지엄숍에서 구매 가능하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조선시대 한양의 명문가의 거주 실태를 연구한 결과 본관을 떠나 지역명을 성씨 앞에 붙여 통용하는 경우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됐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서울이 역사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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