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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의 잡초이야기-70] 어느 여름의 추억 ‘기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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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29. 15:04

(70) 기린초 그림
기린초 그림
혹한을 건너는 한겨울에 여름 시절과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면 잠시나마 마음의 난로가 켜진다.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소녀가 있다. 썰매만 탈 줄 알던 시골 소년에게 읍내 스케이트장의 스타였던 B는 그야말로 저 높은 곳의 공주였다. 유달리 얼굴이 하얗고 얌전했던 B가 평범하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아이들이 재주를 겨루는 야외 실습 시간에 숙제 준비를 못 한 나는 복도 창틀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어 보니 스타 공주 B가 옆에 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한 척 애써 앞만 보고 있는데 내 어깨를 두르는 팔이 있었다. 놀라서 보니 B였다. B가 웃으며 한마디했다. "재밌지?" 어깨동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그 시간 이후로 별명이 '촌놈'인 내가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 기억으로 B는 그 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얼굴에 항상 버짐이 피어있고 왜소했던 내게 B는 왜 어깨동무를 걸어왔을까? 얼굴만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나를 B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 산야에서 여름이 되면 앙증맞은 노란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다. '기린초'다. 기린초의 꽃말은 '소녀의 사랑' '기다림'이다. 올여름 들판에 나가 기린초를 찾아봐야겠다. 그 여름을 추억하며 샛노란 기린초와 인사를 나눠야겠다. "그동안 잘 있었지? 행복하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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