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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도입 4일 만에 ‘이유 없는 기각’ 발의…헌재에 모이는 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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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6. 03. 15. 17:32

헌재 민원실 점검하는 관계자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사법개혁 3법'이 공표된 첫날인 지난 12일 서울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관계자들이 안내문 비치 등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재판소원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법원의 확정 판결을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다시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행 이틀 만에 36건이 접수됐다. 헌재는 연간 1만∼1만5000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상 '4심제'의 문이 열리면서 '남소'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여당은 뒷수습에 나섰다. 사전심사 단계에서 '이유 없는 기각'을 가능하게 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 권리 구제 확대'를 재판소원의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대다수를 초기에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각 결정의 이유조차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은 헌재의 심사나 판단 기준을 알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원하는 사건만 선택해 심사할 수 있는 '상고허가제'가 헌재에 도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 심사 권한과 사건 선별 권한을 손에 쥔 헌재가 미 연방대법원과 같은 최고 권력기관으로 기능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재판소원제 1호 사건 청구인은 시리아 국적 외국인이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출입국 당국의 강제 퇴거 명령 및 보호 명령 취소 처분을 확정하자,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유튜버 '구제역'과 대출 사기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재판소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지정재판부가 명백히 이유 없는 청구를 기각할 수 있게 하고 그 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헌재법은 지정재판부가 헌법소원 사건을 사전 심사해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각하'하도록 한다. 그러나 요건은 갖췄지만 내용상 다툴 가치가 없는 사건은 '기각'할 수 없어 상당수 사건이 본안 심리로 넘어가고 있다. 불필요한 청구를 초기에 신속하게 걸러내겠다는 게 여당의 입법 취지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헌재는 강력한 사건 선별권을 갖게 된다. 이유가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 기각'은 정치적 판단이나 임의적 기준이 개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약자·소수자 사건은 비주류로 취급될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단심제인 헌법 재판 특성상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다툴 방법 또한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 탄생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 전문 변호사는 "사실상 대부분의 헌법소원이 사전심사 단계에서 기각·각하될 것이다. 그 이유도 국민들이 알 수 없다면 재판소원의 명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아니냐"며 "결국 재판소원이 실질적인 권리 구제 통로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구가 쏟아지면 중요 사건과 경미한 사건을 구분해 걸러내는 역할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며 "정작 헌법적 가치를 심리하고 판단하는 헌재의 핵심 기능이 소홀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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