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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의 에이전틱 이코노미] ⑪ 광부들의 잔치, 그리고 그 다음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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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2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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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⑨편 첫머리에 필자가 인용한 그 풍경으로 돌아가 보자. 6월 초 떴던 그 뉴스 '수원과 강남의 명품관에서 인기 모델 가방이 일제히 품절'됐다는 소식 말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직원들이 1인당 최대 6억 원의 성과급을 받기로 합의한 직후였다. 같은 시기, 한국의 컴퓨터관련학과 졸업생들은 이력서 50통을 보내고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⑨편에서 우리는 후자 '갱도 입구에서 떨어지는 카나리아'를 보았고, ⑩편에서는 그 카나리아가 왜 그토록 빠르게 떨어지는지를 보았다. 이번 회는 같은 갱도 안쪽, 명품관에서 가방을 사 들고 돌아온 광부들의 풍경이다.

◇ 한 분기 57조 원, 그리고 1인당 6억 원

삼성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4월 30일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 57조 2천억 원을 공시했다. 단 한 분기만의 수치다. 그중 53조 7천억 원이 반도체 부문에서 나왔다. AI 학습용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데이터센터향 반도체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했던 결과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달라며 5월 21일부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했고, 파업을 하루 앞둔 5월 20일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다. 결과는 메모리사업부 직원 1인당 최대 6억 원의 성과급이었다.

여기서 가장 부조리한 풍경이 시작된다. 같은 AI 호황이 한쪽에서는 1인당 6억 원의 성과급을, 다른 쪽에서는 사상 최악의 신입 채용 절벽을 만든 것이다. 같은 갱도, 같은 가스. 안쪽의 광부들에게는 호황의 보너스로, 입구의 카나리아들에게는 죽음으로.

◇ 같은 회사 안의 100배 격차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같은 풍경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6억 원 성과급은 반도체 메모리사업부에 한정된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AI 인프라에 직결되지 않은 비반도체(DX) 부문 직원은 추가 성과급 없이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만 받았다. 같은 회사 ID 카드를 단 사람들 사이에서도 AI 호황의 빛은 100배 차이로 갈렸다. 사다리의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서뿐 아니라, 한 회사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PwC의 2025년 분석에 따르면 AI를 능숙히 다루는 노동자는 평균 56%의 임금 프리미엄을 받는다. 골드만삭스는 AI 대체 노출도가 표준편차 한 단위 올라갈 때마다 신입과 경력자 임금 격차가 3.3%포인트씩 벌어진다고 측정했다. 시니어에게 AI는 위협이 아니라 보너스의 가속기다. 신입 한 명을 안 뽑은 자리만큼, 시니어의 명품관 진열대가 비어간다.

◇ 광부의 안도는 착시다

그러나 카나리아의 죽음은 잔치의 신호가 아니다. 19세기 광부들이 갱도 깊은 곳에 새를 데려간 이유는 단 하나--그 새가 죽으면 곧 자기들도 죽을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광부가 카나리아의 죽음을 보고 '나는 다행이다' 하며 술을 따른다면, 그는 갱도의 작동 원리를 통째로 잘못 이해한 사람이다.

지금 한국의 잘나가는 시니어 사무직과 그들을 부리는 경영자들이 누리는 풍요는, 정확히 그 종류의 착시다. AI가 회사 신입의 일을 가져간 그 능력이 10년차 과장의 일을 못 가져갈 이유는 없다. 그 능력이 다시 1년 만에 16배 발전한다면, 20년차 부장의 일을 못 가져갈 이유는 더더욱 없다. 오늘 메모리사업부에서 6억 원의 성과급을 받은 그 엔지니어가 5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라 누가 보장하는가.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정확히 그가 지금 가장 잘하는 일--패턴 분석, 회로 최적화, 코드 작성--이라면, 그가 다음 카나리아가 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갱도 깊은 곳의 유독가스는 새를 다 죽인 다음 자연스럽게 인간 쪽으로 올라온다.

◇ 정작 광부 자신도, 다음 차례다

지난 ⑥편부터 ⑩편까지, 우리는 한 사건의 다섯 측면을 보았다. 소비자가 AI 에이전트에게 구매 결정을 위임하는 풍경, 마케팅이 사람이 아니라 그 에이전트를 향하게 된 풍경,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이 무너지는 풍경,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사회 적응의 첫 비용을 치르는 풍경, 그리고 그 비용이 인간의 적응 속도를 추월하는 풍경이었다. 이번 회에서 우리는, 그 첫 비용이 마지막 비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다.

명품관에 줄 서는 광부들은, 곧 자신들의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들에게는 어디로도 떠나갈 갱도가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카나리아는 갱도 입구 쪽에 있어 가장 먼저 죽었다. 그러나 갱도는 막혀 있다. 안쪽 깊이 있을수록, 빠져나갈 시간이 늦어질 뿐이다.

다음 회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카나리아도 광부도 모두 떨어진 갱도에서, 그 잃어버린 노동의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AI의 부와 권력이 어떤 새로운 손으로 모이고 있는가. 에이전틱 이코노미의 진짜 승자는 누구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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