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서세동점의 역사적 격동기를 살다 간 화가와 철학자는 서구와 한국이라는 두 세계/실존 간 균열과 갈등을 한국미와 (한국)예술로 봉합하며 공명하고 있다. 이들의 운명적인 공명은 한 통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한이, 참, 보고싶구만. (…중략…) 산처(山妻) 향안이 편지 속에서, 요한이 소식을 늘 듣고 있어요. 바쁘신데 자조 들려주셔 고마워요. (…중략…) 대관절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가. 이대로 살다 죽으면 억울할 것도 같고 좀, 영광(榮光)을 누리다 죽어야겠는데 그 영광을 도모지 모르겠거든. 여보소, 철학자(哲學者)! 좀 가르쳐주어요. (…중략…) 거리에 나가면 소위(所謂), 일류(一流)라는 화랑(畵廊)을 들러 보는 데, 거개(擧皆)가 공허(空虛)한 유희(遊戱)만 같애. 미술가(美術家)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요술쟁이요 관중(觀衆)은 모두 속아 넘어가는 것만 같애.
서울이 하두 답답해서 나오기는 했는데 나와봐야 비위에 맞지 않아. 그래 늘 서울을 그리워하며, 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쨋든 내 영주처(永住處)는 서울일 수밖에 없어요. (…중략…) 요한이, 지금 밤, 자정(子正)이 지났군. 그립기만 해요. 언제나 우리, 재미나게 모아 살가. - 1964년 2월 16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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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안의 모티프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여름달밤'(1961년, 캔버스에 유채, 194×146㎝)과 유사하다. 김환기의 고향 기좌도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여름 달밤'처럼 푸른 색조로 통일된 화면은 몇 개의 분할된 색면과 산, 달, 구름 등 도식적 형태들이 배치되었다.
그림 속 모티프들은 화가가 떠난 고향, 즉 기좌도, 서울, 한국이라는 특정 장소의 재현인 동시에 일반적인 고향을 상징하는 기호로 보인다. 푸른 색조의 도식화된 산과 달, 하늘, 구름 등은 편지 속 가득한 고향에의 그리움과 뜨겁게 조응한다.
잘 알다시피 김환기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진도군 기좌도(현재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하여 중동중학교를 다니다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30년대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74년 타계하기까지 프랑스와 미국에서 두루 활동하다 이국땅인 미국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고향인 기좌도, 서울, 한국을 그리워하며 그 고향 친구들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를 희구하였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의 실향(失鄕) 철학자 조요한에게 예술을 위해 스스로 이주(移駐)를 자처한 화가의 이 한 통의 편지는 어떤 의미였을까. 조요한은 자신의 저서 '예술철학'(1973년)에서 시인과 철학자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한 하이데거의 사유에 관해 서술한 바 있다.
세계화, 국제주의, 전지구화 등 가속화된 고향 상실의 시대를 오늘이라 예감하고, 근원에 가까이 감으로써 고향에 돌아온다고 하였다. 화가가 그리워한 고향, 그 망향에서 철학자의 근원에 이르는 철학적 통찰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편지 속 이 한마디를 다시 읽어 본다. "요한이, 지금 밤, 그립기만 해요. 언제나 우리, 재미나게 모아 살가."
/김주원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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