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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설계자들 ④] 감옥서 셰익스피어 네 차례…안와르의 ‘24년 복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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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10.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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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의 정치범서 75세 총리로
아내·딸이 지킨 개혁당, 10년 넘는 옥고
마하티르·UMNO와도 손잡은 연합의 정치
경제는 선방, 개혁은 지연…말라카 선거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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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만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피아노 옆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잠깐 노래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그는 1965년 인도 영화에 나온 키쇼르 쿠마르의 노래 '당신은 꿈인가, 현실인가'를 불렀다. 79세 총리가 선보인 뜻밖의 볼리우드 무대에 박수가 쏟아졌다.

안와르에게는 감옥에서 자주 부른 노래도 있다.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릴리스 미(나를 놓아줘)'다. 그는 지난 2024년 TIME 인터뷰에서 "출소한 뒤로는 부를 수 없다"고 농담했다.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놓아달라'는 가사 때문에 아내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이 싫어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책은 노래보다 더 오래 그를 붙잡아줬다. 독방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을 네 차례 읽고, 코란과 중국 고전, 힌두 서사시와 러시아 소설을 파고들었다. 1970년대 구금부터 1998년과 2015년의 수감까지 그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10년을 넘는다.

2022년 11월 안와르는 마침내 총리 취임 선서를 했다. 1998년 부총리 자리에서 쫓겨난 지 24년 만이었다. 그가 권력으로 돌아온 과정에는 오래 버티는 힘과 어제의 적과도 손잡는 연합의 기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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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학생 시절의 안와르 이브라힘(왼쪽). 농촌 빈곤과 말레이계 청년 문제를 제기한 학생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투데이 캡쳐
◇마하티르가 키운 후계자, '검은 눈'으로 추락
안와르는 1947년 페낭의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회의원을 지냈고 어머니는 집권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지역 여성조직에서 활동했다. 말라야대 학생 시절에는 농촌 빈곤과 말레이계 청년 문제를 파고들었고, 이슬람청년운동(ABIM)을 공동 창립했다. 1974년 케다주 발링의 빈곤 시위를 지원하다 국가보안법에 따라 재판 없이 20개월간 구금됐다.

정부 밖에서 개혁을 외치던 청년을 권력 안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마하티르 모하맛 당시 총리였다. 안와르는 1982년 UMNO에 입당한 뒤 교육장관과 재무장관을 거쳐 1993년 부총리에 올랐다.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승진이 빨랐다.

두 사람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대응과 권력 승계를 둘러싸고 갈라졌다. 안와르는 정부지출 삭감과 금융개혁을 밀어붙였고, 마하티르는 자본통제와 경기부양을 택했다. 1998년 9월 2일 안와르는 해임됐고 18일 뒤 체포됐다.

법정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의 왼쪽 눈은 검게 부어 있었다. 구금 중 당시 경찰청장에게 폭행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경찰청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안와르는 권력남용과 동성애 혐의로 수감됐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는 정치적 기소라고 비판했고, 연방법원은 2004년 동성애 유죄 판결을 뒤집어 그를 석방했다. 검게 멍든 눈은 '레포르마시(개혁)' 운동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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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도중 한 시위 참가자가 눈에 멍이 든 안와르 이브라힘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들어 올리고 있다/로이터 연합
◇아내와 딸이 지킨 24년 복귀전
안와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안과의사였던 아내 완 아지자가 거리로 나왔다. 1999년 국민정의당을 세우고 남편의 지역구였던 페르마탕파우에서 당선됐다. 장녀 누룰 이자도 훗날 국회의원이 됐다. 가족은 짧은 면회 때 유리벽 너머로 그와 전화로 대화했고,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옛 팝송을 불러줬다.

2004년 출소한 안와르가 중심이 된 야권 연합은 2008년 총선에서 집권세력의 개헌선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2015년 그는 또 다른 동성애 혐의로 다시 수감됐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고 국제사회에서는 재차 정치적 기소라는 비판이 나왔다.

복귀를 위해서는 가장 오래된 적과도 손잡았다. 2018년 안와르 진영은 마하티르와 연대해 61년간 집권한 UMNO 정권을 무너뜨렸다. 마하티르가 먼저 총리를 맡고 안와르에게 자리를 넘기기로 했지만, 2020년 연정이 무너지면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회는 2022년 총선에서 다시 왔다. 어느 연합도 과반을 얻지 못하자 국왕은 안와르를 총리로 임명했다. 결정적인 의석을 보탠 세력은 자신을 축출했던 UMNO가 이끄는 국민전선(BN)이었다. 안와르는 BN과 보르네오 지역 정당들을 묶어 통합정부를 만들었다. 권력을 빼앗은 당과 권력을 되찾기 위해 한 정부에 들어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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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6일 말레이시아 국왕의 사면을 받아 출소한 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안와르 이브라힘/채널뉴스아시아(CNA) 캡쳐
◇옛 적과 세운 정부, 안정 뒤에 쌓인 타협
통합정부는 2020년 이후 이어진 정권 교체와 정치적 혼란을 일단 멈췄다. 말레이시아 경제도 올해 2분기 6%, 3분기 잠정치 5.3% 성장했다. 안와르가 재무장관을 겸해 내놓은 2027년 예산안에는 최저임금을 1700링깃(약 55만원)에서 2000링깃(약 65만원)으로 올리고 소득세 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6%에서 3.3%로 낮추겠다고 했다.

개혁의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의무적 사형제 폐지는 마무리됐지만, 총리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은 지난 3월 두 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반부패위원회 수뇌부를 둘러싼 비위 의혹에 대한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나오면서 최대 연정 파트너인 민주행동당(DAP) 내부에서는 정부 참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안와르는 개혁을 추진하려면 정부가 먼저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오랫동안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연정 유지를 위해 받아들인 타협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야당 시절의 안와르는 개혁의 속도를 요구했지만, 총리가 된 안와르는 먼저 연정 파트너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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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8일 포트딕슨에서 열린 집회에서 안와르의 옆에 앉아 있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오른쪽)/AP 연합
◇말라카에서 확인할 '통합정부'의 실체
다음 시험대는 11월 14일 말라카주 선거다. 주의회 선거 결과가 안와르 정부의 연방의회 과반을 직접 흔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2022년 어렵게 세운 통합정부가 선거에서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연합인지, 중앙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잠시 묶인 경쟁자들의 동상이몽인지는 이 곳에서 드러날 예정이다.

말라카에서는 안와르의 희망연대(PH)와 연방정부 파트너인 국민전선(BN)이 사실상 경쟁자로 돌아섰다. BN은 2021년 전체 28석 중 21석을 얻어 단독으로 주정부를 구성했다. PH는 5석에 그쳤다. 연방 통합정부 출범 뒤 PH 의원들이 주정부 운영에 일부 참여했지만, 올해 7월 선출되지 않은 주의원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개헌안을 둘러싼 갈등 끝에 철수했다. 안와르가 협상을 요청했지만 결별을 막지 못했다.

BN은 기존 21석을 모두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PH와 의석을 나누는 대신 연방 야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과 손잡았다. PH 역시 옛 동맹인 버르사투 등을 포함한 'PH 플러스'를 모색했다. 푸트라자야에서는 한 내각에 앉은 정당들이 말라카에서는 서로 다른 파트너를 찾아 표를 겨루는 셈이다.

안와르에게 중요한 것은 주정부를 차지하느냐만이 아니다. 조호르주 선거에서 PH는 BN에 크게 밀렸다. 말라카에서도 현재 5석을 지키지 못하면 총리는 안와르지만 선거를 움직이는 지역조직은 BN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다. 차기 총선 후보 배분과 통합정부 운영에서도 안와르가 BN에 더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감옥에서는 혼자 버티면 됐지만 통합정부에서는 경쟁자의 표와 조직이 필요하다. 11월 14일 개표 결과에는 안와르가 다음 총선까지 지금의 연합을 끌고 갈 수 있는지,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가 함께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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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립왕궁에서 열린 총리 취임식에 참석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신임 총리/로이터 연합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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