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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수로왕릉서 돼지를 도축하는 것이 전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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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균 기자

승인 : 2026. 10. 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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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기자
허균 기자
지난 25일 수로왕릉에서는 가락국 시조대왕 숭선전 추향대제가 봉행됐다. 정영두 경남 김해시장은 초헌관으로 첫 잔을 올렸고, 제관과 종친, 시민들은 수로왕과 왕후의 위업을 기리며 전통 제례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해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숭선전 제례를 수로왕의 높은 뜻을 기리고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런데 이 엄숙한 제례를 둘러싸고 짚어야 할 일이 있다. 추향대제 하루 전 수로왕릉 안에서 제례에 사용할 돼지 2마리가 도축된 사실이다. 성생례를 마친 돼지들은 왕릉 안 제례 음식 준비 공간인 고직사에서 도축됐다.

성생례는 제례에 사용할 희생물을 살피는 의식이다. 제례에 올릴 돼지를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에 전통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제례를 주관하는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관계자들은 흑돼지 여부와 제사상에 올릴 머리와 다리 등 제물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외부 도축장에서는 전통 방식에 맞춰 준비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수로왕릉은 제례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가락국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적 장소다. 그곳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도축하는 일이 오늘날의 문화유산 관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방문객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시 왕릉에는 양산 지역 초등학생들이 방문해 성생례를 지켜봤다. 전통 제례를 배우고 역사적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찾은 아이들에게 돼지 울음소리와 도축 과정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전통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전통이라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논란은 제례를 관리하는 내부에서도 있었다. 김해김씨 종친회 김종간 참봉은 과거부터 봄과 가을에 각각 돼지 2마리를 도축해 제례에 사용해 왔다고 설명하면서도, 내부에서 직접 도축하는 데 반발이 있었다며 내년부터는 왕릉 안에서 직접 도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과 도축 장소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함께 존재한다는 얘기다.

김해김씨 종친회 관계자이자 이번 사안을 고발한 A씨는 수로왕릉이 시조 수로왕을 모신 역사적 공간이고 숭선전 제례가 경남도 무형유산으로 전승되는 만큼, 이런 곳에서 불법 도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만 도축 행위의 위법 여부는 관련 법규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확인돼야 할 사안이다.

김해시는 왕릉 안에서 돼지가 도축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도축 장소와 절차가 관련 규정에 맞는지 확인하고, 제례 주관 측과 함께 합법적이면서도 전통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제물 준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관리·감독 체계도 돌아봐야 한다.

전통은 과거의 방식을 무조건 반복하는 데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오늘의 기준에 맞게 지키고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하는 일도 전통 계승의 일부다. 수로왕의 뜻을 기리고 숭선전 제례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는 김해시의 다짐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왕릉 안에서 벌어진 도축 논란부터 책임 있게 정리해야 한다.

전통을 지키는 일과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일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수로왕릉의 품격을 지키는 길은 그 두 가지를 함께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허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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