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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인들은 왜 ‘치이카와’에 빠지는가… 고단한 현실 속 작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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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도쿄 통신원

승인 : 2026. 11. 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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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쟁·불안정한 미래를 견디는 세대에 인기
‘세상을 바꾸는 성장’에서 ‘오늘을 버티는 치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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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연합
"올여름 개봉해 흥행 수익 160억엔을 넘기며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치이카와의 주 관람객은 뜻밖에도 어린이가 아닌 성인층이다. 그 배경에는 귀여운 캐릭터에 대한 선호를 넘어, 경쟁과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비롯된 심리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경제 평론가 사노 마이키는 문화 주간지 DIME에서 현재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치이카와 붐에 관해 이와 같이 분석했다. 사노 씨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밥을 먹고, 친구와 놀고,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치이카와는 단순하고 사랑스러운 일상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세계는 평화롭지만은 않다. 등장인물들은 생계를 위해 잡초를 뽑고, 위험한 토벌에 나서며, 자격시험에 도전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치이카와 작품 속 노동 구조가 현대 사회와 닮았다"고 짚었다.

또 더 강한 상대와 맞서 싸우거나 특정 능력을 갖출수록 더 많은 보상을 얻는 구조는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소득을 높이기 어려운 현실과 겹쳐 보인다고 분석했다.

캐릭터들이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험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당장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집중한다. 사노 씨는 "이러한 설정이 독자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씁쓸함을 주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받는 듯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이카와의 매력은 거대한 성공이나 극적인 신분 상승에 있지 않다.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를 걱정하며, 힘든 일이 끝난 뒤 잠시 안도하는 순간에 있다. 고된 노동과 위험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일상 속 '소확행'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는 현대인이 체감하는 노력 보상의 괴리와도 맞닿아 있다.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쌓아도 주거비와 생활비, 교육비 부담이 줄지 않고 미래의 안정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면, 성공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보다 당장의 심리적 안정이 더 절실해질 수 있다.

이러한 서사는 지금까지 일본의 주류 애니메이션이 다뤄왔던 영웅 서사와 대비된다. 과거의 인기 작품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능력을 발견해 성장해 가는 인물들을 보여줬다면, 치이카와의 노력은 지금의 삶을 견디고 조금씩 개선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치이카와가 잡초 뽑기 시험에 계속 도전해 결국 합격하지만 그것이 세계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성공의 확신보다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다.

사노 씨는 "'귀멸의 칼날'과 치이카와의 대비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탄지로는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며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 부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적극적인 변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치이카와의 인기는 세상을 바꾸려는 이야기에서, 변하지 않는 현실을 견뎌내는 이야기로 대중의 관심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또 치이카와 열풍 이면에 일본 사회의 '심리적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 성장하려는 사람과 현재를 받아들이며 안정적인 일상을 지키려는 사람으로 나뉘는 현상이다. 이는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작품 속 치이카와는 불만을 말로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싫은 내색을 하기 어렵고 부당함을 느껴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직장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을 억눌러 온 현대인을 연상시킨다. 작품은 그러한 감정을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표정과 행동, 눈물과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이때 캐릭터의 '귀여움'은 현실의 도피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버거운 감정을 안전한 거리에서 마주하게 돕는 매개체가 된다.

사노 씨는 "치이카와의 인기는 어른들이 단순히 귀여운 것에 열광한다는 사실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치이카와가 주는 위로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친 이들에게 작은 행복과 휴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고통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개인의 회복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한계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이 견뎌야 할 일로만 받아들인다면 현실의 부당한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혜 도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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