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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전 제물로 묻힌 인골 2구, 경주 월성 성벽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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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7. 05. 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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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지구 성벽 내 인골 출토 세부
월성 서쪽 성벽에서 나온 인골 세부 모습./제공=문화재청
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 성벽에서 약 1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왔다.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로,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 설화가 허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6일 경주 월성에서 열린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5세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서쪽 성벽 문지(門址, 문 터)의 기초층에서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워 있는 인골 1구와 얼굴과 팔이 이 인골을 향해 있는 또 다른 인골 1구를 지난해 12월 발견했다고 밝혔다.

인골의 얼굴 주변에서는 나무껍질이 부분적으로 확인됐고, 발치에서는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의 토기 4점이 함께 나왔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똑바로 누운 인골은 키 166㎝의 남성이고, 다른 인골은 이보다 조금 작은 159㎝로 아직 성별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자연 퇴적층에 1.5m 높이로 흙을 쌓은 뒤 사람 두 명을 묻고 다시 9m 높이로 성벽을 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고 곧게 누운 점으로 미뤄 사망한 뒤에 묻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의례 행위를 치르고 나서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께) 시기에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 설화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골이 출토된 서쪽 성벽은 조사를 통해 5세기께 처음 축조돼 6세기에 최종적으로 보수됐고, 문이 있던 자리는 유실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경주 월성의 서북쪽 해자에서는 높이가 5∼10㎝에 달하는 독특한 모양의 토우(土偶, 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의 인형)들과 월성의 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목간도 나왔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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