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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어린이예술단으로 남·북교류 물꼬 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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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8. 07. 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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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영상화사업 성공, 서예박물관 재개관, 어린이예술단 창단 등 성과
산업디자인관 조성, 전당 앞 지하보도 전시장 탈바꿈 계획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인터뷰13
예술의전당 최초로 연임 기록을 세운 고학찬 사장은 공연영상화사업을 통해 고급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문화 영토를 넓힌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사진 = 송의주 기자 songuijoo@
서울 서초구 우면산 중턱에 자리 잡은 ‘문화예술의 본진’ 예술의전당의 수장인 고학찬 사장(70). 예술의전당 사상 최초로 연임 기록을 세운 그가 지난 2013년 부임한 이래 이뤄낸 성과는 눈부시다. 공연영상화사업, 서울서예박물관 재개관, 어린이예술단 창단 등을 성공시키며 연간 300만 명이 넘는 관람객 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예술의전당 문턱을 낮추고 문화 저변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연영상화사업으로 예술 영토 확장

한때 방송국 PD를 했던 고 사장은 예술의전당 14대 사장으로 부임한 2013년, 공연영상화사업(SAC on Screen)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26만여 명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며 서울과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문화소외계층에 우수 공연예술을 만끽하는 기회로 활용됐다.

“울릉도문예회관에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을 상영했어요.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일어나 춤을 추고 난리가 났지요. 나중에 그 아이들 중 한명으로부터 엽서를 받았어요. 자기가 발레를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아서 나중에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정말 기뻤습니다.”

그는 이 사업을 통해 오페라, 발레, 음악 등 고급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문화 영토를 넓힌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예술의전당에 공연 보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늘 오던 사람들이 주로 와요. 하지만 영상화사업은 공연을 보러오기 힘든 사람들이 예술을 접하고 ‘멋있다, 생각보다 근사하다’ 하면서 나중에 관객으로 찾아오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는 해외 교포들에게도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해 뿌듯하다고 전했다.

“제가 15년 동안 미국에 살았습니다. 교포들은 조국을 떠났지만 늘 조국을 그리워하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해외에서 고국의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공연영상화사업을 통해 해외에 사는 교포들에게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20개국 이상의 해외문화원에서 상영하고 있습니다. 교포들이 한국을 떠날 때 우리 모습만 기억하고 있다가, 이 영상물을 보고 고국의 문화예술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돼 자부심을 느낀다고 해요.”

특히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가곡의 밤’을 상영했을 때 나이지리아 인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교포들이 우리 가곡에 대한 애착이 많아요. 그래서 ‘가곡의 밤’을 나이지리아 한국문화원에서 상영했는데 이상하게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는 겁니다. 가곡을 영어로 번역해서 자막을 씌웠는데, 그 가사에 공감한 거죠. 지금 나이지리아 상황이 우리 과거와 비슷하다보니 가곡을 듣고 어머니, 고향 생각이 난다며 크게 공감했답니다.”

그는 가곡이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점에서는 K-클래식으로 성장한 가능성이 큰 장르라고 바라봤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에서 처음 영상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렇게 하면 누가 오겠냐, 공연 망한다”고 반대했던 것처럼, 그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반대가 심했다. 정부 지원도 없었다.

“예산 먼저 확보하고 일을 하려면 못 해요. 영상화사업은 기업체와 후원회를 찾아다니면서 후원금을 받아 시작했지요. 처음에 3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해, 2015년 국고 10억 원, 2016년 10억 원, 2017년 6억 원, 2018년 6억 원을 확보하며 총 국고 32억 원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서예박물관 재개관으로 관람객 4배 증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2016년 3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후 2017년 기준 연간 16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하며 재개관 이전 연평균 4만 명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관람객을 동원하고 있다.

“서예박물관 재개관은 시대적인 사명이었다”고 고 사장은 돌아봤다.

“서예가 우리나라 예술 장르 중 가장 오래된 장르인데도 그 수명이 다 돼 가는 위험한 지경이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손으로 직접 쓰는 문화가 없어지니, 서예 장르가 위험에 쳐해 있었지요. 예술의전당 내 음악당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서예박물관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어요. 나이 많으신 분들만 왔다 갔다 했죠. 리노베이션을 통해 전시장의 높낮이도 다양하게 만들고, 그래피티 전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젊은이들이 여기 와서 ‘예술의전당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놀라워하더라고요.”

지금 이곳에서는 중국 미술의 대가 한메이린의 세계순회전이 열리고 있다. 김정숙 여사도 전시 개막일 이곳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지난해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된 ‘한중수교 25주년 기념 - 치바이스’전은 경색된 한중관계를 풀어내는 촉매로 작용하며 국가 간 문화교류 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들도 있다. 이에 관해 그는 “서예 본연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고인 물이 점점 탁해지듯 그렇게 될 수 있다”며 “‘문화’라는 강이 흘러야 하는데 강이 흐르려면 새로운 물줄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예 장르를 새로운 모습으로 일궈나가는 동시에 전통을 보존하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며 “여러 다양성을 가지고 서예박물관을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에는 중국 미술관에서 김정희 추사전도 열 계획이다. 그는 이를 통해 “대한민국 서예에 대한 인식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인터뷰2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이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송의주 기자 songuijoo@
◇어린이예술단과 남북 문화 교류 앞장서고파

고 사장의 치적 가운데 하나로 어린이예술단 창단도 꼽을 수 있다.

2016년 창단된 어린이예술단은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국악·기악·합창 등을 통해 폭넓은 예술에 눈 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약 22건의 공연과 행사를 통해 1만9000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요즘은 동요 부르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데 어린이는 어린이 정서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린이예술단을 만들었고, 때마침 빈소년합창단을 지휘하던 김보미 지휘자가 연세대학교 교수로 한국에 오게 되면서 지휘를 부탁했지요.”

그는 어린이예술단이 남북 문화 교류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봤다.

“아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금방 친해지잖아요. 아이들이 손잡고 놀면 어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예술단이 남북 교류에 물꼬를 터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노래한다면, 그 천진난만한 모습이 바로 진정성 있는 남북 교류의 시작이 아닐까요. 통일을 향한 길의 맨 앞에 우리 어린이들이 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남북 화합에 관해 “동질감 회복에는 문화밖에 없다”며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디자인관 조성 비롯해 유휴 공간 전시장 탈바꿈 계획

임기가 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고 사장은 지금도 예술의전당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는 요즘 비타민스테이션과 연결된 주차장(2175㎡, 658평)을 터서 뉴욕현대미술관(MoMA) 같은 산업디자인관을 만드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그 빈 공간을 광장으로 만들어서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디자인전시를 선보이면 어떨까 싶어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생활과 관련된 디자인에 관한 영감까지 얻는다면 더욱 좋겠죠.”

또한 그는 식당가가 입점 돼 있는 오페라극장 앞 지하 비타민스테이션에서 음식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전시를 하는 것도 고려중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다가 너무 맛있으면 ‘와, 이거 맛이 예술인데’ 그러잖아요. 유명 셰프들의 음식을 전시하거나, 음식과 관련된 그릇 등 데코레이션 전시 등을 통해 생활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아울러 그는 예술의전당 앞 지하보도도 서초구와 연계해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와 보니 그 앞 지하보도가 하루 종일 사람도 한 명 안 다니고 쓸모없는 공간으로 버려지고 있더라고요. 전당 안에는 애완동물을 못 데리고 들어오게 돼 있는데, 요즘은 반려동물 시대잖아요. 지하도를 전시장으로 만들어서 동물들도 데리고 와서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거쳐 간 직업만 25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갈 것”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 사장은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다. 최불암·임현식·노주현 등을 길러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는, 1970년 당시 동국대·중앙대·한양대의 연극영화과 출신을 통틀어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사 공채시험에 합격한 PD가 됐다.

그가 만든 라디오 드라마 ‘어린이 소년극장’은 히트를 쳤다. 그가 탄생시킨 손오공은 ‘뽀로로’ 못잖은 인기를 누리며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그동안 자연음만 사용하던 음향효과에 최초로 전자음을 사용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어 그는 서수남·하청일 듀오가 주연한 라디오 뮤지컬 ‘유쾌한 샐러리맨’을 탄생시켰다. 라디오 뮤지컬이라는 것 자체가 최초였다. 타자기와 결재 도장으로 리듬악기 소리를 만들어낸 이 작품이 또한 히트했다.

33세 때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건방진 마음에”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바텐더부터 교수까지 거쳐 간 직업만도 25가지다.

늘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었다.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참 소박하다. 사람을 대할 때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허름한 고깃집이나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는 그는 지금도 ‘헝그리 복서’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


◇그는…

△1947년 제주 출생 △1966년 서울 대광고 △1970년 한양대 영화과 졸업 △1970~1977년 TBC 동양방송 PD △1977~1980년 방송작가 활동 △1982~1989년 뉴욕 KABS 편성제작 국장 △1994년 ㈜제일기획 Q채널 국장 △1995년 삼성영상사업단 방송본부 국장 △2009~2012년 윤당아트홀 관장 △2013년~ 예술의전당 사장 △2018년~ 중국미술관 국제고문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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