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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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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31. 17:41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52회>
송재윤
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 전쟁은 지구인의 숙명인가?

오늘날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우주산업을 추진하는 지구인들은 여전히 전쟁의 포화에 휩싸여 있다. 2025년 중반까지 러시아 측 사상자는 100만명을 넘었고, 우크라이나 측 사상자는 50만에 달한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여러 도시에 수천 발 미사일을 쏘아대며 12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백 명의 인질들을 잡아갔다. 이에 이스라엘은 강력한 보복 공격을 개시했고, 지난 2년 가자 지구에선 이미 6만~7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선 2023년 이래 수단 내전이 발생하여 15만명 이상 폭력, 질병, 기근 등으로 사망했다. 콩고에서도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들고일어나 정부군과 충돌했다. 소말리아에서도 반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선 지난 7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분쟁이 발생했다. 이 밖에도 대만해협, 남중국해, 인도-파키스탄 국경, 한반도 휴전선 등 지구의 곳곳엔 일촉즉발의 화약고(flashpoint)가 수두룩하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전쟁이 터져야만 할까?

"지구인은 왜 그토록 파괴적인 전쟁을 치러야만 하나요? 전쟁은 진정 지구인의 숙명인가요?"

외계인 미도가 던지는 이 질문은 인류사의 근본적 물음이다. 개개인은 누구나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한시도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정된 재화를 놓고 벌어지는 부득이한 생존 경쟁일까? 인간의 DNA 정보체계에 내재하는 잔학성의 발로일까?

진정 지구인의 문명사에서 '전쟁과 평화'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다. 전쟁을 빼고선 문명의 흥망성쇠를 논할 길이 없다. 문명사는 곧 전쟁사라 할 수 있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잠시 펼쳐지는 평화의 시기는 비유하자면 활화산의 휴지기와도 같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사도 그 점을 웅변한다.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항으로 진입하는 아테네 해군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항으로 진입하는 아테네 해군. 19세기 판화.
◇ 고대 그리스 문명의 역설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물리친 그리스 세계는 대략 50년 정도 평화의 시기를 구가하지만,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스파르타는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7년간 고대 그리스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대다수 역사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전쟁은 당시 그리스 총인구 300만~400만 중에서 15만~2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테네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전쟁 발발 초기 아테네에선 큰 역병이 돌아 전체 인구 25만~30만 중에서 무려 5만~7만명이 아티카의 비좁은 성벽 안에 갇힌 채로 병사해야만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인류 고대사에 기록된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투키디데스(Thucydides, 대략 기원전 460-400)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법과 종교가 무너지고, 전통과 정의가 실종되고,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포로들을 학살하고, 사내들을 다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 삼는 반인륜적 범죄와 보복의 악순환을 깨알같이 기록했다. 민주정을 자랑하는 아테네 시민들도 저항하는 도시국가를 응징하면서 남자란 남자는 모조리 처형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를 삼는 만행을 범했다. 역으로 시칠리아에서 포로가 된 아테네 사람들은 채석장에 끌려가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굶어 죽어야만 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낳은 위대한 그리스 문명이 왜 이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면서 몰락해야만 했을까? 쉽게 설명되지 않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역설이다.

투키디데스의 석상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남긴 투키디데스의 석상
◇ 투키디데스의 함정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원인에 관해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가 강성해지자 스파르타가 공포심에 휩싸였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강력한 상무(尙武) 정신으로 무장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세계를 이끄는 최강국이었는데,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이끌며 경쟁국으로 등장하자 양국 사이의 전쟁이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2017년 하버드 대학 그라함 앨리슨(Graham T. Allison)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으로 2차대전 이래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이끌어온 미국과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한 중국 사이에서 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앨리슨은 지난 500년간의 인류사에서 기존 강국과 신흥 강국이 대립했던 16건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했다. 그 16건 중에서 대립하는 양국이 결국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쟁을 치른 사례는 12건에 달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청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독소전쟁 등등은 모두 신흥 강국의 급부상에 공포를 느낀 기존 강국의 군사적 대응이 전쟁으로 비화된 역사적 선례들이다.

물론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전쟁을 피해 간 사례도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살벌한 군비경쟁을 벌였지만, 양국은 전면전을 일으키진 않았다. 2차 대전 종식 이래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지난 80년간 세계 대전의 재발을 불허하는 놀라운 억지력을 발휘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이유는 소련과 중국이 핵무장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핵전쟁은 인류의 공멸을 의미하기에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을 대표하는 미·소 양국은 정면충돌을 극구 피했다. 그 대신 양대 진영 사이의 충돌은 대리전(proxy war), 내전, 군사 정변, 혁명 소요 등의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2차대전이 종식되던 1945년부터 구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 46년의 세월 동안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아프리카, 중동, 남미의 내전으로 1500만에서 2500만이 목숨을 잃었다.

◇ 전쟁의 역설, 이성의 간지(奸智)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소 양극 체제는 일단 막을 내렸다. 소련이 무너진 후 30년 넘게 지속된 중국의 부상은 세계를 다시 위험한 상황으로 끌고 가고 있다. 스파르타에 도전하는 아테네의 등장처럼 미국의 독존적 지위를 흔드는 중국의 급성장은 위협적이다. 지난 80년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영도해 온 미국과 최근 세계 2위의 군사·경제 대국 중국은 과연 슬기롭게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전쟁은 대규모 인명 살상, 경제적 혼란, 사회적 파괴를 수반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인간은 없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지만, 문명이 흥기(興起)한 이래 전쟁은 단 한 순간도 인류를 떠난 적이 없었다. 지난 1만 년 인류의 문명사는 경쟁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경쟁과 투쟁은 문명을 움직이는 어두운 동력이었다.

물론 경쟁과 투쟁만으론 인간의 삶을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공동의 목적 아래 서로 뭉쳐 화합하고 협동하며, 뜻맞는 이들끼리 결속하고 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범인류적 화합, 협동, 결속, 연대는 오히려 공동의 위기에 직면한 지구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전쟁이 인류의 숙명이라면, 이제 전쟁이 과연 인류사의 큰 물줄기를 어떻게 바꿔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7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갔다. 거의 70년이 지난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에서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323)는 그리스, 페르시아, 소아시아, 아프리카, 이탈리아반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세계사적 전기가 마련됐다. 전쟁이 더 큰 전쟁을 불러와 세계 제국의 건설과 그리스 문명의 보편화를 촉진했던 '전쟁의 역설'은 역사에 숨겨진 이성(理性)의 간지였다.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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