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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다림이 곧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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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03. 13:19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요즘같이 빠른 변화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곧 재화이고, 기다림은 낭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때일수록 기다림의 미학이 더 필요하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내일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리고, 순서를 기다리고, 병의 완쾌를 기다리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만남을 기다리고, 사랑을 기다리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등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수용하며 생존한다.

기다림은 슬픔과 절망, 불행을 참고 견디는 힘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슬픔에서 기쁨을, 절망에서 희망을, 불행에서 행복을 끌어 올린다. 한 중국 여류작가가 미국 방문 중 뉴욕 거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초라한 옷차림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나약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여류작가는 꽃을 고르며 할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할머니,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한껏 미소를 띤 얼굴로 "왜 즐겁지 않겠어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요."라고 대답했다. 여류작가는 다시 "고통이나 고민에 대하여 마음 편히 생각하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여류작가의 손을 잡으며"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가장 슬픈 하루였죠. 그런데 사흘 후 부활하시지 않았나요? 그래서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 마다 꼭 사흘을 기다린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모든 게 정상으로 변해 있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슬픔과 절망, 불행이 있을 때 사흘을 기다린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철학적인 삶의 태도인가? 지금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고통을 미래에 찾아올 희망으로 정화하는 이런 긍정적인 믿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지혜이다.

편리함을 주는 재화는 우리 삶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밀어내고, 욕구에 즉시 반응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기다림은 삶에서 재화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 앞에 나타난다. 기다림을 배우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아킴 데 포사다는 저서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40년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시작된다. 연구자는 어린이를 혼자 방에 남겨두면서 마시멜로를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지금 먹어도 좋지만 15분간 먹지 않고 참으면 기다림에 대한 보상으로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알려 주었다. 받자마자 냉큼 먹은 아이들도 있었고 15분간 참아서 상을 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연구의 결과는 실험 14년 후에 나왔다. 연구자들은 실험 대상이었던 아이들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15분간 참았던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당장 먹은 아이들보다 훨씬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다림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기다림은 침묵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고 준비하는 성장의 시간이다. 준비 없는 기다림은 허송세월일 뿐이다. 기다리는 동안 뜻을 이룰 수 있는 능력, 여건이나 환경, 시기의 세 가지를 완비하는 것이 진정한 기다림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흠뻑 젖어있는 우리 사회는'기다림'에 서툴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기다림에서 온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의 가능성을 믿고 직원들의 성장을 기다렸고, 링컨은 느리지만 성실한 그랜트 장군을 신뢰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스티브 잡스는'사람과 기회를 단번에 판단하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팀원을 격려했다. 확신이 없을 땐 멈추고, 불분명할 땐 기다려보는 여유와 자세가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일 수 있다. 

/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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