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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베트남 인사들은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크게 기대했다고 한다.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민주주의의 중심을 잡아 큰 관심을 모은 덕이다. 그러나 기대감은 이내 황당함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 의장의 말은 "책 읽는 연습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조악하게 통역됐다. 게다가 통역사는 럼 서기장에게 자신의 통역에 대한 칭찬을 유도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해 놀랐다"고도 했다. 직접 들어보라며 건넨 녹취에선 국가의 공식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와 품격이 구겨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미 예고된 통역 참사였다는 점이다. 아시아투데이 취재에 따르면 이런 통역 참사는 지난 2022년 응우옌 쑤언 푹 당시 국가주석과 지난해 7월 팜 민 찐 총리의 방한 행사에서도 벌어졌다. 국빈만찬이 "시장바닥에 있는 줄 알았다"는 수준으로 통역되고 총리 부인의 일정에선 "통역이 엉망이라 보고서를 작성할 수가 없다"는 상대국의 난처함이 이어졌다. 양국 관계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엉터리 '목소리'가 대한민국의 입을 대신하는 아찔한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경고등이 여러 차례 켜졌지만 '한번 쓰면 계속 쓰는' 정부 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그 불을 스스로 꺼버렸다. 베트남 측에선 전부터 문제였던 통역의 전례를 들어 통역 인력 교체를 우회적으로 요청해도 "이미 계약해 바꾸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이 돌아오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됐다. 상대국의 정치·문화적 맥락까지 이해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통역이지만 우리 정부 기관은 통역의 질을 교차 검증하거나 상대국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국 외교관들은 외교적 결례가 될까 봐 그 자리에서 즉시 문제 삼지 않고, 그렇게 '문제적 통역사'는 다음 정부 기관의 행사에도 어김없이 추천 명단에 오른다.
이런 통역사가 다음 행사에도 관성적으로 추천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새로운 실력자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통역사의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베트남어 통역판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력보다 인맥이 중요해지는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건전한 비판이나 피드백은 사라지고, 결국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수준 낮은 통역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는 칼을 빼 들어야 한다. 외교부 등 주요 부처와 기관에선 통역사 선정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학자들과 협력해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력풀을 갖추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행사의 중요도와 성격에 맞는 최적의 통역사를 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이름에 걸맞은 신뢰는 정확하게 전달된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쌓여 만들어진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지키는 일,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