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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美 정치 지형 흔드는 ‘생활비 정치’, 한국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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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23. 17:27

'부담 능력 악화', 트럼프 기반 흔들어
뉴욕 등 선거서 '청년층 반란'도 뚜렷
구체적 비용 공략해야 내년 地選 승산
배병우 논설위원
배병우 논설위원
요즘 미국 정치의 키워드로 부상한 단어가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다. 사전에는 '어떤 것을 구입하거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나 그 정도'라고 돼 있다. 간단히 '지불 혹은 부담할 능력'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요즘 이 단어에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어려있다. 생활에 밀접한 비용들이 크게 오르면서 '지불 능력'이 악화일로이기 때문이다. 어포더빌리티는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이나 경기(景氣)와는 결이 다르다. 주거비, 식료품비, 보건의료비, 연료비 등 일상에서 몸으로 느끼는 '생활비(cost of living)'와 직결돼 있다. 특히 임대료,집값 상승에 따른 주거 불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4일 뉴욕시장 선거에서 무슬림이자 민주사회주의자인 34세의 조란 맘다니가 당선됐다. 승리의 배경에는 뉴욕의 악화하는 어포더빌리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선거 전략이 있었다. 맘다니는 청년층과 중저소득층이 부담을 호소해 온 주거비, 보육료, 교통비 등 생활비 이슈에 화력을 집중했다.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30달러로 인상, 무상버스, 무상보육, 시립 식료품점이 선거 공약이다. 한 번만 들어도 이해되고 피부에 와닿는 간단명료한 것들이다. 거창한 이념적 구호나 인종·젠더·성소수자 등 민주당의 단골 의제는 배제됐다.

뉴저지 주지사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들도 비슷한 전략을 채택했다. 뉴저지주 마이키 셰릴 후보는 당선 첫날부터 공공요금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는 공약으로 표를 모았다. 버지니아주의 에비게일 스팬버그 후보는 상승하는 비용을 끊임없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실패 탓으로 돌려 표심을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생활비가 오르고 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며 물가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미국인의 체험과 통계 수치 모두 그 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불과 1년 전 인플레와 치솟는 생활비를 무기로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을 난타해 대통령이 된 그에게는 당혹스러운 상황 반전이다. 미 언론은 '생활비 정치(affordability politics)'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도 경고 신호다. 가깝게는 내년 6월의 지방선거가 '생활비 선거'가 될 수 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4% 올라 1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외식비 등 먹거리와 서비스 가격이 오름세를 견인했다. 체감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무엇보다 우리 소비자물가에는 자가주거비(자신이 소유한 집에서 사는 경우 내야 하는 관리비, 유지보수비, 세금 등의 비용)가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60%에 이른다.

10·15 부동산대책은 주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매매가격은 일시 '동결'했을지 모르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전·월세가격에 불이 붙었다. 내년에는 후유증이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값 급락)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려 전방위로 생활비 부담을 높일 수 있다.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를 시험하고 있다.

미국 선거에서 민주당 압승의 주역이 청년이라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뉴욕시장 선거에서 18~29세 청년들의 맘다니 지지율은 75%에 달했다. 청년층 투표율은 4년 전 선거 때에 비해 325% 폭증했다. 주거와 고용시장의 약자인 '성난 20대'들이 맘다니의 생활비 정치에 몰표를 던진 것이다. 한국에도 생활비 정치가 확산될 토양이 충분하다. 아니, 심각한 청년실업과 체감물가를 고려하면 미국보다 폭발성이 클 수 있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18개월 연속 하락해 40%대 초반이다. 30대에서 '그냥 쉬었음' 인구도 33만명이 넘는다.

이 모든 지표들은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한 신호다. 유독 20·30대에서 바닥을 기는 여당 지지율은 그 방증이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처음도, 끝도 내란세력 척결' 프레임으로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10·15대책의 '삼중 규제'지역을 줄이고 신속한 주택공급을 막는 규제를 손봐야 한다. 물론 민주당엔 믿는 구석이 있다. 여당의 악재가 늘었는데도 반사이익을 챙기지도 못하는 국민의힘의 무능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의 '생존 시험장'이 될 수 있다. 생활비 선거로 몰고 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서도 추상적 이념이나 '윤석열·계엄'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당 해체론이 다시 나올 것이다. 경제 문제를 다루더라도 민생, 성장률, 경기 등 두루뭉술한 의제보다는 구체적인 비용을 집중 공략해야 효과가 클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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