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영 2차 종합특검, 沈 첫 소환
합동수사부에 검사 파견 등 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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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재판의 의미는 형량에만 있지 않았다. 재판부는 10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 곳곳에 12·3 비상계엄의 밤 검찰 조직이 남긴 흔적들을 빼곡히 적어 넣었다. 내란 특검팀이 공개하지 않았던 법무부와 대검찰청, 일선 검찰청 사이의 연쇄 연락 정황, 비상계엄 정당화 논리 문건 작성 과정, 포렌식 인력 출동이 의심되는 통화 내역까지 처음으로 법정 기록에 담겼다.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듯 재판부가 복원한 그날 밤의 시간은 새로운 질문을 남겼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검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법무부와 검찰 조직 곳곳에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을까. 내란 특검팀도 끝내 설명하지 못한 그 물음은 이제 권창영 2차 종합특검팀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졌다. 2024년 12월 3일 밤, 그날 밤 검찰은 왜 움직였을까.
◇"합수본 검사 파견 준비"…박성재, 법무부·검찰에 지시
모든 것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7시 41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실로 들어오라." 짧은 통화가 끝난 직후에는 윤 전 대통령의 두 차례 문자메시지도 이어졌다. 박 전 장관은 곧바로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다.
대통령실로 향하는 동안 또 다른 통화가 이뤄졌다. 오후 7시 49분, 그리고 오후 8시 5분. 박 전 장관은 공안·선거·집회시위 사건 등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A 공공형사과장에게 연이어 전화를 걸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약 2시간 전이었다.
대통령실에 도착한 박 전 장관은 그곳에서 비상계엄 계획의 실체와 마주했다. 오후 8시 27분께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있는 집무실로 들어간 박 전 장관은 "오늘 밤 10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동시에 출국금지 조치 등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필요한 조치가 담긴 문건도 건네받았다.
그 뒤 약 40분 동안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비상계엄 계획을 공유하는 회의가 이어졌다. 국무위원들이 차례로 들어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설명을 듣고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을 전달받았다. 박 전 장관은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인지했을 뿐 아니라, 각 부처에 전달될 계엄 관련 지시 내용까지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대통령실을 나온 뒤에도 그는 윤 전 대통령에게 받은 문건을 여러 차례 꺼내 확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장관의 시선은 법무부와 검찰로 향했다. 오후 10시 57분께 그는 법무부 검찰국 B 검찰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사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오후 11시 1분께 심우정 전 검찰총장에게도 연락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등을 파견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전했다.
그날 밤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졌다. 박 전 장관은 검찰국 간부들에게 계엄사령부가 검사나 검찰 직원 파견을 요청할 경우 신속히 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계엄사령부의 요청이 오면 곧바로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라는 취지였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법무부는 또 다른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번에는 인력 파견이 아니라 비상계엄을 설명할 논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박 전 장관은 12월 4일 오후 3시 28분께 B 검찰과장에게 전화해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내세운 '입법독재', '탄핵소추 남발', '예산 삭감' 등을 근거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보고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검찰과 소속 검사들은 국회의 탄핵소추 현황과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내역 등을 정리하며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작성된 문건은 텔레그램을 통해 박 전 장관에게 전달됐고, 박 전 장관은 직접 수정 지시를 내린 뒤 수정본까지 보고받았다. 그는 해당 문건이 담긴 휴대전화를 소지한 채 같은 날 저녁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했다.
재판부는 법무부 검찰국 공무원들이 계엄의 정당화 논리를 검토하거나 내란 혐의 수사에 대비한 법률 대응 문건을 작성할 의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검찰국 소속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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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수원·성남 잇는 검찰 지휘라인의 움직임
재판부가 주목한 장면은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검찰 내부에서 이어진 연락이었다.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이 오후 10시 57분께 B 검찰과장에게 법무부 복귀를 지시한 직후, 오후 11시 1분께 심 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검사와 수사관을 파견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전달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직후부터 검찰 조직 곳곳에서 연락망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심 전 총장은 전화를 받은 직후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에게 연락했고, 다시 공안수사지원과장으로 연락이 이어졌다. 공안수사지원과장은 법무부 공공형사과장과 통화한 뒤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과 검찰 메신저를 통해 추가 보고를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연락 흐름이 계엄사령부의 인력 파견 요청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의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의 내란행위 가담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추가적인 정황이 존재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조은석 내란 특검팀 수사에서도 규명되지 않은 여러 통화 기록을 적시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권순정 전 수원고검장과 김유철 전 수원지검장, 성남지청 차장검사 등이 잇달아 검찰 간부들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특히 강백신 전 성남지청 차장검사는 B 검찰과장과 통화한 데 이어 허정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에게도 연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가 가장 의미 있게 본 인물은 허정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허 부장은 오후 11시 13분부터 비상계엄 해제 이후까지 대검찰청 명의 유선전화와 일선 검찰청 간부들 사이에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디지털수사과가 통상 포렌식 현장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연락들이 단순한 전화가 아니라 일선 거점검찰청 포렌식 수사관 출동과 관련된 연락으로 의심할 정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조은석 내란 특검팀의 공소장과 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결국 재판부는 박 전 장관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판결문 곳곳에 '그날 밤 검찰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가'라는 새로운 의문을 남겼다. 계엄사령부의 검사 파견 요청에 대비한 움직임이었는지, 실제 수사 인력 동원 준비가 진행됐던 것인지, 왜 대검찰청과 일선 검찰청 간부들 사이에 연쇄 연락이 이어졌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남긴 의문은 권창영 2차 종합특검팀의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2차 종합특검팀은 24일 내란 가담 의혹에 휩싸인 심 전 총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심 전 총장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박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가 "검찰의 내란행위 가담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추가 정황"이라고 적시한 만큼 향후 2차 종합특검팀의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 전 장관의 1심 판결은 전직 장관의 유죄 선고로 끝나지 않았다. 판결문이 복원한 '비상계엄의 밤'은 검찰 조직이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는 작업은 이제 2차 종합특검팀의 몫이 됐다.











